정보
제목 지친 심신을 치료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 히말라야
작성일 2014.10.06
작성자 황*지
상품/지역
트레킹히말라야




지친 심신을 치료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 히말라야

나의 20대는 언제나 일 뿐이었다. 20대 초반 영화감독이 되어 보겠다는 꿈을 갖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부모님을 곁을 떠나 나왔지만 결국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월급 생활자라는 직장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맞이한 20대 후반의 나는 나보다 여유로움을 간직한 듯한 또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지 않았고, 직장 동료들과 깊은 동료애를 갖는 것도 힘들었다. 꿈을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그저 돈을 버는 시간 자체로 청춘을 흘려보낸 것 같은 생각이 가슴 속에 늘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히말라야는 3주라는 긴 시간을 보낼 첫 장기 여행지였다. 지금껏 내가 보낸 시간을 후회할 것인지 앞으로의 나의 삶의 방향은 어떤 방향으로 채워야 하는 건지, 그리고 잊고 있었던 나의 본질을 찾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그 질문들에 해답을 얻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 마음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남은 인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한 동행이 있었기에 결심이 어렵지는 않았다. 회사도 결혼과 함께 안식휴가와 같은 긴 휴가 기간을 주었고, 나는 무사히 트레킹을 마치고 즐거운 추억만 가지고 돌아오겠다며 산더미 같은 일을 맡기고 네팔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신혼여행지하면 대부분 휴양지나 유명 도시를 생각하지만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히말라야만을 생각했다. 산악반 출신도 아니고 산행도 자주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히말라야는 마치 이상향처럼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 한번쯤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설산을 보면서 걷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눈을 떴을 때 설산이 보인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그러한 취향이 맞았다. 그런 상상들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우면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히말라야 책과 정보를 주워 담았다. 네팔과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알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히말라야에서 말하는 롯지는 호텔처럼 깨끗하게 씻을 수 있고, 좋은 시설이 갖춰진 곳이 아니래. 그저 트레커가 몸을 누일 수 있도록 판자로 구분된 방에 공동 화장실은 대부분 밖에 있대. 바케스로 뜨거운 물을 한 그릇씩 사서 얼굴 주변만 겨우 닦을 수 있는 곳이라는데 우리도 절대 씻으면 안되고 트레킹할 때 옷하고 잘 때 옷을 구분해야 한데 등등. 어쩌면 지금껏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즐거운 상상들 속에 트레킹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게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 우리는 첫 해외 트레킹 여행이지만 비교적 어렵고 일정이 긴 편인 코스를 선택했다. 당시엔 그 여행으로 인해 히말라야에 빠질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여행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택한 코스였다. 바로 에베레스트 지역의 촐라패스를 넘고 칼라파타르에 다녀오는 코스였다. 무모한 도전일 수 있지만 이 것이 무리하지 않고 걷기 위한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잊지 않기로 했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날 밤 한시까지 야근을 했던 나의 지친 몸은 방콕에서 네팔로 떠나는 비행기가 이륙한 후 약 2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치료받기 시작했다. 비행기 오른편으로 보이는 구름 위 설산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 객석에 앉은 이들이 모두 우측 창가에 붙어 히말라야 산군을 바라보는 것도 재밌는 풍경이었다. 11월 늦은 가을에 떠난 여정이라 하늘은 드높았고,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설산이 보일 만큼 날씨는 축복스러웠다.

트레킹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결심한 것, 그리고 에베레스트 지역의 첫 관문인 루크라 지역에서도 잊지 말고 다짐한 것은 한 가지였다. 절대 무리란 없다. 만일 누군가에게 고산병의 기운이 온다면 고민하지 말고 내려오자는 것이었다.

예상 외로 트레킹의 첫날밤부터 힘들었다. 팍딩은 계곡 옆이라 밤이 되니 꽤 추운 편이었다. 첫날부터 이렇게 춥다니 남은 여정이 걱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곳에 우리의 몸을 맞추는 것만이 해답. 우리는 트레킹 일정을 조금씩 늘려 가기로 했다. 남체에서는 그냥 하룻밤만 자고 상보체를 너머 비교적 큰 마을인 쿰중에서 하루를 더 보내기로 한 것이다. 어쩌면 이 선택은 우리 부부의 남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택이 되었다.

탐셰르쿠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 그리고 그 속에 자리잡은 힐러리 학교와 따뜻한 마을 주민들의 미소들. 쿰중은 여행자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마을이었다.

고산 지역이라 잠을 푹 잘 수 없어 계속 뒤척이고 있는데 남편이 얼른 점퍼를 입고 일어나보라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보게 된 풍경을 혼자만 볼 수 없어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검은색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과 오른손을 올리면 잡힐 것처럼 가까운 북두칠성. 새벽 추위 속에서 고개를 들고 뒷목이 아픈 것도, 발이 시려운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 속엔 우리의 모습도 보였다. 새벽 6시에 촬영 현장에 출근하기 위해 4시 반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내 모습. 남편과 함께 월세에서 처음 전세로 옮길 때 기뻤던 순간들. 어둠 속을 둘러싼 탐셰르쿠와 멀리 떨어진 듯해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아마다블람. 쿰중에서의 하루는 우리 부부가 히말라야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에베레스트 지역 트레킹은 순조로웠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목표치만큼 걷고, 밤에 잠들기 전엔 타이레놀 한 알씩을 먹었고, 4천미터를 지난 지점부터는 다이아목스 반쪽을 타이레놀과 함께 한 개씩 먹었다. 아침이 되면 나인지도 못알아볼 만큼 얼굴이 붓는 것을 빼곤 다 괜찮았다. 분명히 가까워 보이고, 곧 있으면 도착할 것 같이 보이는 길들을 걸을 때 꽤 긴 시간이 걸릴 때만이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시야가 이토록 깨끗한데 왜 길이 줄어들지 않을까? 처음엔 신기했던 것들 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체력은 고쿄 마을의 아름다운 빙하 호수에 다다라 바닥나고 말았다.
하지만 처음 마음 먹었던 코스에 대한 애착이 있어 5360미터의 고쿄리에 오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약간의 고산증으로 고쿄 마을에 도착한 그 날 낮잠을 잔 우리는 다음날 새벽 4시부터 고쿄리에 오르는 산행을 시행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고쿄리 정상에 다녀온다면 촐라패스도 넘을 수 있다고 격려했지만 슬슬 진행되는 고산 산행에 내 몸은 ‘내려가는 게 어떻겠니’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쿄리에서 아름다운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감상한 후 나는 결단을 내렸다. 트레킹 자체를 멈추던가 아니면 돌아서 올라가던가 하자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긴 일정이 추가되지만 나는 돌아서 올라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내일 촐라패스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너무 지치고 발 걸음이 안 떨어져."
"그래, 그럼 포르체 마을 쪽으로 가서 그쪽으로 올라가는 건 어떨까."

당시 남편은 충분히 그날 촐라패스를 향해 갈 수 있는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하여 함께 고도를 낮추어 내려오는 걸 선택했다. 가보지 못한 길은 아쉽지만 함께 하는 트레킹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므로 가보지 못한 길은 언젠가 둘이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내려왔다. 일생에 단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일 수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도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지내기로 한 일정을 모두 미루고 내려와서 올라가는 걸 선택했다.

고쿄에서 고산에 적응한 나는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향해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론 아무 문제없이 트레킹을 했고, 휴양도시에서 내 생일을 맞이하려고 했던 계획과 달리 탱보체 마을에서 내 생일을 맞이하고 하루를 더 지내기로 했다.

탱보체에서 제대로 된 이틀째를 보내기 위해 눈을 뜬 아침, 그리고 나의 스물아홉번째 생일날, 저 멀리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보이는 곰파에서 하늘을 긁히며 지나가는 구름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은 건가요?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는 건가요?"

저 멀리 설산들은 어쩌면 대답을 회피 했었던 것 같다.

"니가 보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아. 앞으로도 더 좋은 날들이 있을 거고, 더 많은 날들이 남았잖니. 니가 니 삶을 사랑해주면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3주간의 긴 네팔 신혼 여행으로 에베레스트 지역의 매력에 빠진 우리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처음 목표한 곳에 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오게 될 꺼야. 우리 다음 번엔 안나푸르나 지역으로 가보자."

트리뷰반 공항에 앉아있을 때부터 떠나는 마음만으로 우울했던 우리는 다시 올 날을 생각하면서기쁜 마음으로 네팔을 떠나기로 했다.

"금방 다시 오게 될 거야."

그 이후 우리 부부에게 흔히 말하는 네팔병은 지독하게 찾아왔고, 에베레스트 트레킹 이후 안나푸르나 토롱라를 넘는 어라운드 트레킹을 비수기에 떠났다. 그 트레킹을 통해서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고, 네팔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그리고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난 지 딱 2년 후 2010년 가을, 회사의 인수 합병으로 힘들어하던 남편은 지친 몸을 이끌고 혼자서 타이항공 비행기를 끊었다.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 모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동반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