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싱그러운 홍차밭의 풍경, 누와라엘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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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4.12.26 |
작성자 | 전*소 |
상품/지역 | 문화역사탐방인도/네팔/스리랑카 |
싱그러운 홍차밭의 풍경, 누와라엘리야 인도양의 작은 섬, 스리랑카. 그 섬 한 가운데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해발 1,800m가 넘는 고원에 오르면 가슴 속까지 상쾌해지는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곳은 바로 스리랑카 최대의 차 생산지 ‘누와라엘리야’! 적도의 강렬한 햇살과 고원의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찻잎들이 만들어낸 싱그러운 풍경은,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순간 잊게 만든다. 여린 찻잎들 속에서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땅! 이것이 누와라엘리야가 여행자에게 선사하는 첫인상이다. # 작은 영국, 누와라엘리야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영국인들에게 누와라엘리야는 깨끗한 자연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차를 생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시 곳곳에서 영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작은 영국’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대부분의 건물이 전형적인 영국식 건축물의 특징을 지니며, 영국 앤 여왕시대의 저택 양식도 남아 있어 이국적인 풍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콜롬보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마치 영국의 시골 마을을 걷는 듯한 분위기에 향긋한 홍차까지 한 잔 곁들인다면 그 순간만큼은 누와라엘리야가 영국이다. # 세계 3대 차 생산국, 아픈 역사를 간직한 실론티의 나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실론티의 고향은 바로 스리랑카. 흔히 홍차 하면 영국을 떠올리지만 그 ‘실론티’는 엄연히 스리랑카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 인도와 함께 세계 3대 차 생산지로 손꼽히는 스리랑카의 옛 이름은 실론(Ceylon).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은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 아편전쟁의 결과 더 이상 중국에서 차를 수입할 수 없게 된 영국은 서늘하지만 일조량이 풍부한 스리랑카를 선택하였다. ‘빛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적도의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청정고원이야말로 홍차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영국인들의 입맛을 만족시킨 스리랑카의 차는 그렇게 ‘실론티(Ceylon Tea)’라는 이름으로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 순수한 미소를 머금은 타밀족 여인들 누와라엘리야가 스리랑카 최대의 홍차 생산지이자 세계 3대 차 생산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드넓은 계단식의 차 밭을 돌아다니며 여린 찻잎을 골라내는 타밀족의 여인들이 없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인도 남부에서 스리랑카로 이주해 온 타밀족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최상의 홍차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찻잎을 선별해낸다. 초록의 찻잎을 붉은 홍차로 만드는 과정은 기계를 이용할 수 있지만, 홍차를 만들기 위해 찻잎을 따는 것만큼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매일매일 머리에 커다란 자루를 이고 차 밭을 돌며 손을 대기 미안할 정도로 여리디 여린 찻잎을 채취한다. 워낙 섬세하게 해야 하는 공정이다 보니 맨손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검은 손이 더욱 검게 변하지만 그녀들의 입가에는 순수한 미소가 가득하다. 일한 것에 비하면 넉넉하지 않은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속에서 싱그러움 넘치는 초록빛 파도와 함께 하며 생활할 수 있어서인지 언제나 생기가 넘친다. 자루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수록 분명 피곤을 느낄 법한데, 그럼에도 그저 묵묵한 손길로 여린 잎들을 골라내는 손길은 섬세하기만 하다. 순박한 미소를 머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를 꼬박 차 밭에서 보내는 삶. 넘치기보다는 모자라지 않는 삶! 그래서 그녀들은 언제나 최고의 피사체가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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