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행자마저 철학자로 만드는 도시, 바라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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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01.08 |
작성자 | 전*소 |
상품/지역 | 문화역사탐방인도/네팔/스리랑카 |
여행자마저 철학자로 만드는 도시, 바라나시 바라나시라는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인도의 갠지즈 강가에서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갠지즈강에서 시체를 태워 한 줌의 재로 보내는 화장터가 함께 자리잡고 있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TV에서 인도 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특별한 장면들, 인도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대부분 바로 바라나시에서 매일 일어나는 풍경들이다. 갠지즈강의 중류, 물살이 바뀌는 지점에 위치한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힌두교 성지 중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특이하게 힌두교 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 등 다른 종교들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도시이기도 하며 흔히 죽음과 탄생이 맞닿아 있는 곳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묵은 때나 가지고 있는 죄를 씻어내는 의미를 나타내는 목욕과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생의 마감을 의미하는 화장의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는 풍경은 인도인들의 삶의 철학이나 풍습을 잘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는 더없이 낯설은 풍경이다. 바라나시가 여행자의 성지가 된 이유는 이러한 풍경 자체가 인도인들에겐 어색하지 않지만 여행자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벗어난 매우 특별하고 새로운 풍경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숙이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알고자 노력하면 인도인들에게는 그 풍경이 전혀 새롭지 않은 매일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힌두교는 흔히 수많은 신을 모시는 종교로만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교리 중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전생의 업' 이론이다. 카스트 제도의 근간이기도 한 이것은 본디 태어날 때부터 전생의 죄로 인해 현생의 삶의 계급이 정해져 있다는 힌두교의 섭리로 이해된다. 인도인들의 종교 중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는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때문에 인도인들은 힌두교의 최고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다음 삶이 현생보다 더 낫게 태어나길 바라고 전생의 업이 갠지즈 강물에 씻겨가길 끊임없이 소망한다. 이러한 바라나시에서 죽음보다 더 강하게 표출되고, 여행자에게 피부로 와닿는 것은 현재의 삶에 대한 인도인들의 태도이다. 계단 형태로 4Km가량 이어지는 가트는 전생과 현생에 쌓은 업이 강물에 씻기길 바라며 목욕을 하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바라나시에 머무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지나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바라나시의 가트에서는 목욕 의식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인도인들의 지독한 노동의 에너지가 들끓는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이른 아침 갠지즈강의 일출을 보기 위한 돛단배를 태우기 위해 여행자를 졸졸 쫓아다니는 소년의 모습, 매일 지나는 여행자에게 어제는 보지 못하였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차가운 음료수를 사지 않을래? 하면서 말을 거는 수퍼 가게 주인장의 모습, 다샤스와메트 가트에서 물에 띄울 디아를 손에 들고 다니며 한 개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 아르띠 뿌자 의식이 끝난 후에 숙소로 들어가는 여행자의 바지 가랑이를 잡으며 구걸하는 이들의 모습, 바라나시는 여행자에게 아침 6시부터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그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왜 인도에 가면 삶과 죽음을 논하게 되는지, 수많은 문인들과 철학자들이 바라나시에 머물렀는지 여행자가 되어 바라나시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바라나시의 곳곳에서 지독하게 쥐어짜내는 그들의 삶에 대한 에너지를 느끼고, 덧없이 한 줌의 재로 강물 속에 자신들의 삶을 끝내는 장면을 동시에 보면서 여행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흔히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하는 삶의 풍경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바라나시가 보여주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은 그 어떤 순간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욱더 큰 파장으로 여행자의 가슴에 다가온다. 자신의 생 앞에 주어진 해답들을 찾고자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여행을 떠난 이라면 바라나시에서 자신이 앞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생각하게 되고, 삶에 대한 끝없는 의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여행자의 의무는 여행자가 머무는 곳의 공기를 충분히 마시고, 그 곳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 에너지, 그 곳을 채운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여행자의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자각하며 멀게는 스스로의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바라나시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여행지가 되어 준다. 지친 여행자가 배낭의 무게를 내려 놓고, 털썩 주저앉아 목구멍으로 밥알을 하나씩 삼키고 있을 무렵, 식당의 창문 밖으로는 그날 한 줌의 재가 될 시체가 지나간다. 부자로 살았든 가난한 자로 살았든 마니까르니까 가트에서 그들 삶의 무게는 태워질 장작더미 무게만큼만 차이가 날 뿐이다. 철학자와 여행자, 그리고 글을 쓰는 이들은 이러한 풍경 속에서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지식과 자신이 뿜어내고 싶었던 말들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 바라나시가 주는 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현재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라는 것, 그 것이다 오래된 종교의 철학과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먼지를 모든 건물들에 덧칠하고 사는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을 깨끗이 벗겨버리기만 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과연 내가 속한 사회의 현재는 과거 어디서부터 진행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 해답 역시 여행자가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풀 수 있는 문제들인 것이다. 바라나시는 여행자마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곳이다. 오늘도 마니까르니까 가트에선 끊임없이 시체가 타고 있고, 다샤스와메트 가트에선 매일 밤 강가의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일어나며 매일 아침이면 많은 이들이 바라나시의 가트 곳곳에서 자신의 업을 씻어내는 목욕 의식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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