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 상품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법이라 출발 전 부터 그것이 제일 궁금하였었다. 각 항목별로 장단점을 정리해 본다.
1. 항공편
아시아나와 사천항공 두 종류가 있는데 프로그램을 보면 고객이 선택하는 기준이 명확하다. 일정이 바쁘고 트레킹만 관심 있으면 아시아나, 트레킹도 하고 문화 체험도 하고, 시간 여유도 있으면 사천항공을 선택하면 된다. 일정은 새벽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사천항공이 더 좋고 비용도 저렴하다. 그러나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사천항공 탔다가 중국인들 앞자리에 좌석을 배정 받았다간 4시간 동안 엄청난 소음에 시달려야 하고, 혹시나 비행기가 추락해도 보상을 몇 천만원 밖에 받지 못하다는 사실이 심하게 흔들리던 기체 안에서 갑자기 생각났다. 아, 내가 욕심이 좀 과했구나.
2. 호도협 트레킹
성도 도착해서 잠을 못 잔 상태로 다음날 새벽에 여강에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는 버스로 2시간 반을 이동해서 28밴드 트레킹을 시작한다. 과히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그러나 항공편 때문에 이러한 스케줄을 변경할 방법이 없다. 전날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다음날 2000m 가 넘는 지점에서 트레킹이 결코 쉽지는 않다. 28밴드 경사가 그리 심하지도 않고 (삼각산보다 완만함) 경치도 좋은데다가 오래 걸리지도 않고, 힘들면 말에게 배낭을 맡기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소증도 아직 오지 않는다. 단지 졸릴 뿐) 먼지가 심하므로 앞 사람과 거리를 두고 걸어야 한다. 뒤쳐져도 후미에서 시간을 충분하게 주니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문제는 차마객잔 숙소이다. 신관 룸이 부족해서 여성들과 부부들에게 먼저 배정하다보니, 남자들은 구관에 배정되었다. 가이드 왈, 구관은 방음 문제가 있단다. 과연 그랬다. 옆방의 옷 갈아입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심지어 자려고 불을 껐는데 옆 방의 불빛이 그대로 새들어왔다. 난방은 전기 장판이 전부다. 그래도 따신 물이 나오니 이게 얼마인가? 밤에는 추웠는데 알고보니 방 문에 엄청난 틈이 벌어져서 찬바람이 아무 저항 없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산장인데. 산장의 밤은 몹시 춥다. 낮에는 햇볓 때문에 뜨겁다. 짐을 잘 챙겨가야 한다. 너무 많이 챙겼다간 28밴드에서 말에게 배낭을 맡기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호도협은 과연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에 속할 자격이 있을까? 허풍쟁이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뻥은 아닐까? 항상 의심이 들었지만 결론은 3대 트레킹 코스의 지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아찔하고 멋지다.
3. 옥룡설산 트레킹
여강으로 이동해서 고성 안에 있는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내일 4000m 까지 가려면 잘 자야 하는데 왜 잠이 오지 않을까? 밤 새도록 숙소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을 설쳤다. 고산에 들리는 환청인가 숙소의 소음인가? 숙소의 소음이었다. 건물 전체의 히터에서 소리가 발생하는데 오래되어 그런지 밤에 고주파 잡음이 심하게 들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다음날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할 수 없이 가져간 수면 유도제를 먹었다. 고산 트레킹 전날 밤 수면제라니. 숙소의 아침 식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여강 고성은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좋나보다. 날씨는 화창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3500m 까지 오르는데 갑자기 고도를 높이니 어지러웠다. 설산소옥까지 멋진 초원의 트레킹 코스가 펼쳐져 있다. 왜 저렇게 멀지? 가 보지 뭐. 올라가는데 숨이 조금 차오른다. 어,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한참 걸어가니 숲이 나오는데 이런, 내리막이다. 지도에는 설산소옥까지 오르막으로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리막이라니, 나중에 이걸 어떻게 돌아오라고..... 내리막이 상당히 길었다. 올라온 고도만큼 내려가야 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 내리막 때문에 설산소옥까지 트레킹이 쉽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300m 만 오르면 3800m 에 위치한 설산소옥에 도달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헤초는 여기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지도에는 설산소옥까지 오르는 구간의 내리막 구간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생강차와 누룽지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이드 왈, 2시에는 어느 위치에 있든지 하산을 시작해야 한단다. 고산에서의 반환점은 없고 반환 시간만 있는 셈이다. 이런 트레킹은 처음이다. 2시간 안에 3800m 에서 4300m 까지 단숨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고도 500m 를 2시간에 오른다고? 한국에서는 충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는 4000m 고지대이고, 고도를 2000m나 갑자기 높인 상태에서 2시간이라는 사간 안에 500m 를 더 올라갔다가 케이블카까지 3시간을 더 내려가야 한다니? 5시까지 도착 못하면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되기 때문에 무조건 도착해야 한단다. 고산지대에서 받는 시간의 압박이 컸다. 가이드는 산행 속도가 빨랐다. 4000m 고산에서 삼각산 오르듯 속도를 내는 것이다. 산악회에서 삼각산 오르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희안한 것은 저 속도를 따라가는 회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근육이 약한데다가 폐활량이 부족한 나는 천천히 산행을 한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지 않고 선두를 따라가다간 아마도 여기가 내 무덤이 되리라. 속도를 늦추었다. 선두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 헉헉대고 있다. 더군다나 골격이 튼튼해 보이던 분들이 아얘 보이질 않는다. 머리가 아파온다. 다행히 구토 증세는 없다. 다른 분들은 구토 증세가 온다고 했다. 한 두 명씩 처지기 시작한다. 난 아직 힘이 남아 있었기에 천천히 내 페이스에 맞춰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점점 경사가 더 심해져 온다. 그러더니 도착한 곳이 여신동, 4060m 팻말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30분이다. 250m 올라오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린 셈이다. 앞으로 30분 이내에 설산아구 4160m 까지 올라야한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앞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더 심해졌다. 게다가 조금만 잘 못 디뎠다간 천길 낭떨어지 아래로 추락이다. 자갈 길이라 미끄러지면서 올라야 한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보다 몇배나 더 위험한 길이다. 어지러움이 심해졌는데 잠시라도 정신을 잃었다간 바로 추락사한다. 순간 이제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숨도 못쉬는데 무슨 노래냐구? 노래를 부르니 리듬에 맞춰 발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머리 아픈것도 없어졌다. 이제 고산에 적응이 되려나? 너털길을 다 오르니 원주민 가이드가 가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2시였다. 잰장,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아직 힘이 남아 있는데. 원주민 아이가 저리로 올라가보라고 손짓한다. 2시인데? 횡재했다 싶어 급히 바위 위로 올랐다. 바위를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손이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피가 났다. 2시 넘어서 4150m 지점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다니, 게다가 위아래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어떻게 되겠지 뭐. 설마 날 두고 가겠나? 고개를 돌려보니 풍경이 멋졌다. 토레스 델파이네 삼봉 같은 악마의 이빨보다 큰 봉우리 네개가 멋지게 바라보이는 바위 위였다. 거기가 설산아구였다. 오늘의 목표점 바로 아랫지점인데 가이드가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옥룡설산 자락에서 적막감 속에서 산과 내가 하나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타았다. 원주민 아이였다. 어? 얘는 저 밑에 있었는데? 올라오면서 못봤는데 위에서 내려오네? 내가 염려되어 다른 길로 바위 위로 올라와서 나를 만난 것이다. 참으로 기특한 녀석이다. 14살 이란다. 2시 15분이었다. 2시간 45분안에 케이블카까지 가야하는데 문제는 손가락 부상이다.급경사 내리막에 스틱을 써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원주민에게 손가락에서 나는 피를 보여주니 배낭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갑자기 녀석이 산신령 같아 보였다. 이제 2시간 이내로 하산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여신동까지 급경사 하산길을 지나니 여신동에서 하산하는 동지들이 보였다. 아, 살았구나. 설산소옥에서 한 숨 돌리고 보니 3시였다. 이제 다 되었다 싶어 여유롭게 트레킹을 즐기면서 내려오다가 앗, 다시 오르막을 만난다. 그렇지, 올라오면서 겪었던 그 내리막이 이제는 오르막이 되어 날 괴롭혔다. 갑자기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빨리 하산한다고 속도를 높혔던 바람에 힘을 100% 다 써버린 탓이었다. 아 정말 이제는 못 걷겠다, 한참을 쉬었다. 저 능선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니.... 정말 이를 악물고 다시 걸었다. 하산하면서 올랐던 그 오르막이 정말 힘들었다. 케이블카에 도착하니 4시 40분, 시간은 제대로 잘 맞춘 셈이다. 혜초는 이 트레킹 루트를 개발하면 철저하게 시간을 계산해 넣는 것 같았다. 역시 트레킹전문 여행사답다.
4. 여강 문화 체험 및 성도
인상여강쇼는 멋지다, 누가 재미 없다고 했는가? 수준 높은 공연이다. 여강고성도 둘러볼 만 했다. 성도는 비행기 타기 위해서 쉬어 가는 곳, 그래도 약선 요리는 정말 별미였다.
5. 총평
혜초가 정성들여 만든 최고의 상품이 맞다. 특히 옥룡설산 트레킹은 혜초 전용 코스이다. 시간 배정도 아주 정확하고 일정도 치밀하게 짜여져있다. 식사나 숙소 교통편까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세계 유수의 트레킹 코스를 섭렵한 내 입장에서 보아도 호도협은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에 걸맞는다. 옥룡설산 트레킹은 히말라야를 경험하기 이전에 자신을 테스트 해보기 위한 좋는 연습 코스이자 그냥 고산 체험을 위한 트레킹 코스로도 훌륭하다. 이 정도 코스이면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자유 여행을 하라고 했으면 200만원은 족히 들었으리라. 게다가 미모의 인솔자까지 함께 하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