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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3대 트레킹 호도협/옥룡설산 트레킹 6일
작성일 2018.10.27
작성자 이*진
상품/지역
트레킹중국

차마고도를 지나 옥룡설산을 품다

산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사무칠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에 예약부터 서두른다. 그간 아끼고 아껴두었던 옥룡설산으로 정한다. 많은 분들이 다녀온 곳으로 날씨가 가장 좋은 10월을 택한다. 과연 그럴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행운을 빌어본다.
언제나 해외산행을 갈 때면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떠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배낭과 신발을 비롯한 의류와 간식을 꼼꼼히 챙기면서 장엄한 산허리를 털레털레 걷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밤비행기여서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막상 지루함이 느껴진다. 다시 장비를 챙겨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날씨와 현지정보도 검색해보지만 답답해진다. 더군다나 현지 기상이 좋지 않다는 정보가 마음속을 더욱 무겁게 한다. 이변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니 여행사 직원이 반기며 일정 설명과 수속을 안내한다. 같이 산행할 일행을 소개하고 중국 단체비자에 대한 입국절차를 알려주고 사라진다. 일행 모두 점잖고 온화한 인상이다.
일행은 체크인을 시작한다. 그런데 스틱이 문제다. 모두 스틱을 캐리어에 넣어와 괜찮은데 나만 그냥 가져와 난감하다. 그때 일행이 자기 가방에 넣으라고 선뜻 제안한다. 무진장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나중에 그 분을 회장님으로 부르게 된다. 비자번호도 일번이라 책임이 막중하다.
무사히 짐을 부치고 딸이 부탁한 면세품을 찾고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해외로 나갈 때면 늘 거치는 코스지만 왠지 마음이 들뜨고 산행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발동한다. 나이 탓인가 보다.
시간에 맞춰 게이트에 다다르니 비보가 전해진다. 출발이 지연된다는 거다. 상습적인 ‘사천항공’의 지연인가 싶다. 그래도 30분 정도니 참을만하다. 액땜이라 여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마무리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지 않아 탑승이 시작되어 좌석을 찾아간다. 그런데 내 자리에 아리따운 여성이 앉아있다. 뭔가 착오를 하신 것 같지만 그냥 앉아 가라고 배려한다. 알고 보니 여학생(?)으로 부른 일행이다. 참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4시간 비행 끝에 ‘사천성 성도공항’에 도착한다. 한밤중이다. 단체비자 순서대로 줄을 서서 입국수속을 밟는다. 수속이 더뎌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8번으로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간다. 이미 짐을 나와 있다.
모두 공항 밖으로 빠져나와 가이드를 만난다. 기온이 써늘하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가이드는 ‘사천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시작한다. 피곤하여 관심은 없지만 경청한다.
‘사천성’이 유명한 게 세 가지 있는데 판다 곰과 등소평 고향 그리고 인공위성 기지라고 한다. 또한 지진이 자주 일어난고 인구는 2천만이고 면적은 한국의 8분의 1이며 중국에서 8번째 큰 도시임을 강조한다.
호텔에 이르자 일정을 안내한다. ‘여강’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전 7시반이니 5시반에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가이드의 말만 믿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간다.
매우 피곤하니 머릿속에 휴식만이 가득한 듯하다. 엄청난 해프닝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간단히 샤워하고 잠을 청하지만 쉽게 올 리가 없다. 계속 뒤척이는 선잠으로 새벽을 맞는다.
모닝콜로 일어나 세면 후 가져온 컵라면 하나를 해치우고 로비로 향한다. 가이드가 주는 도시락을 받자마마 바나나부터 없앤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하려는 순간 황당한 사태가 발생한다. 우리 비행기는 이미 6시경에 출발한 것이다. 가이드의 비행시간 착각으로 벌어진 일이다.
가이드는 잠시 기다라고 하고 다른 비행기를 알아보는 눈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않고 우왕좌왕 한심하다. 일행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어찌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가이드의 조치를 기다리기로 한다. 한번 신뢰를 잃으니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도 가이드의 조치가 믿기지 않자 가이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따져본다. 그러더니 10시반 성도항공으로 좌석을 배정받는 중이라고 한다. 진즉 얘기해 주면 좋으련만 초짜 가이드임에 틀림없다.
일단 좌석을 확보하니 가이드는 안심한 듯 일행을 인근식당으로 안내한다. 아침을 대접하여 일행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그나마 다른 비행기가 있으니 다행이라면서 먹을 만한 메뉴를 고른다.
죽과 짠지를 골라 한쪽 구석 자리를 잡고 먹어 보는데 입에 맞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 시간과 싸움이 시작된다. 세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 가이드에 대한 처리문제와 여행사에 보고여부 문제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궁리를 한다. 다들 심성이 착하신 분들이라 무난히 넘어간다.
예기치 않은 사태로 인한 허망한 지루함 끝에 출발이 다가온다. 항공사가 다르니 터미널도 달라 걸어서 이동한다. 옆에 터미널도 걸어가는 일행들의 모습이 마치 어디론가 마지못해 끌려가는 모습이 처량하다. 속으로 액땜을 크게 한번 했으니 이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치부한다.
짐을 부치고 게이트로 가려고 검색대에 배낭을 통과시키는데 물이 있다고 꺼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짐을 하나씩 빼는데 소주 2팩이 걸린 것이다. 아깝지만 포기하고 만다. 김해에서 온 일행이 그건 약이라며 왜 뺏는지 모르겠다고 우스개로 위로를 해주니 한결 마음이 포근하다.
비행기에 올라 한 시간 가량 비행 후 ‘여강’에 도착한다. 아주 작고 아담한 공항이다. 마치 속세와는 다른 기도원 같은 풍광이다. 재빨리 공항을 빠져 나와 가이드를 만난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다는 말에 안타깝다.
얘기할 사연은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산행의 출발점인 ‘교두진’으로 향한다. 창밖에는 가랑비가 내리면서 서늘한 기운이 퍼진다. ‘여강’에 대한 가이드의 소개가 시작된다. ‘여강’은 해발 2400미터 높은 지역이라면서 어느 지역보다 춥게 느껴지니 옷을 챙겨 입으라고 당부한다.
오늘 일정은 늦게 시작하지만 큰 지장은 없다고 하면서 1.5시간 오르다가 1.5시간 내리막으로 숙소인 ‘차마객잔’까지 걷는 여정이다. 아마도 7시반쯤 도착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지루함을 달래려 가이드는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곳은 평균 15도로 살기 좋으나 고산건조와 자외선이 강하다고 한다. 화려한 강이라는 의미의 ‘여강’은 산이 많고 해발이 높아 약초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동충하초’로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팔려나간다. 하나에 12만원부터란다. 또한 능이와 송이버섯도 년 800톤을 수출하고 가격도 한국의 10의 1 수준이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한다.
여강에 사는 민족은 소수민족으로 나시족, 티벳족, 장족, 대리족 등 26개 민족이 있고 운남성에만 있는 민족이 16개인데 대표적인 것이 나시족으로 40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거형태는 3-4세대가 같이 살고 주택은 2층으로 짓는다. 돈을 벌면 사방으로 증축하고 간혹 투자목적으로 건물을 구입하기도 한다. 온화한 날씨로 겨울에 와서 쉬고 봄에 돌아가는 행태가 붐을 이루기도 한다.
매년 3,000만명이 여강으로 관광을 오는데 대부분 중국인이고, 요즘 중국인들의 소득이 높아져 7.5억명이 관광을 즐긴다고 한다. 중국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는 기분이 오묘하다.
아파트 가격은 약 2억 정도로 작은 평수가 70평 정도라 한다. 우리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은 대형유전을 18개 보유하고 있으나 개발을 유보하고 원유수입에 의존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버스는 어느덧 큰 강가를 지난다. 가이드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옆에 흐르는 강이 ‘금사강’으로 ‘호도협’을 지나 장강으로 합류한다. 옛날 금을 캔다는 의미에 ‘금사강’이라 부르고, 장강은 일명 양자강을 말한다.
강 건너 ‘샹그릴라’ 도시에 진입한다. ‘샹그릴라’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영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비행기가 불시착 후 주인공이 꿈의 도시에 탄복하여 그 이름을 따서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가는 길 좌우로는 고속철도공사 한창이다. 최고속도 450키로를 자랑하는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되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버스는 풍경구로 들어서 입장료를 내고 진입한다. 여권검사도 빼놓지 않는다.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가 참으로 길다. 이제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소탈한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하지만 감동이 없다. 여러 가지 요리가 나오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다. 1박 2일 산행에 필요한 짐만 갖고 두 개의 지프차로 나눠 타고 들머리인 ‘나사객잔’으로 이동한다.
공사로 인해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고 걷기로 한다. 5,596미터의 고도에 날카로운 설산의 예봉을 뽐내는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바라보며 걷는 코스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아쉽지만 그나마 비가 쏟아지지 않는 게 다행이다.
포장도로를 지나 ‘나사객잔’을 출발하여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도가 높은데다가 오르막이니 숨이 턱에 차오른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온다. 옷을 하나씩 벗어보지만 흐르는 땀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기분만은 상쾌하다.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옥수수를 층층이 심어 놓은 마을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평화롭다. 수확은 끝났지만 오지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오름을 계속한다. 소위 ‘28밴드’라는 길이 시작된다. 28개의 구비길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고도가 높은데다 구불 길을 오르자니 땀을 줄줄 흐르고 사방은 안개로 구름 위를 걷는 신선이 따로 없다.
처음 서너개 구비는 마음속으로 세면서 오르나 어느 순간 걷는데 열중하다보니 까먹는다. 너무나 당연하다. 일행 중 제일 먼저 앞장서서 가시는 분을 쫓아가는데 힘이 부친다. 나는 그분을 이 순간부터 ‘대장’이라 부른다.
주위에 펼쳐지는 옥룡설산의 위세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짐작이 간다. 간혹 바람이 불어 그 위용이 보이면 저절로 탄복이 나온다. 그 찰나를 놓칠세라 대장님을 멈춰 세우고 한 컷을 찍는다. 바로 이 맛이다.
한참을 오르는데 외국인 커플이 뒤쫓아 온다. 나보다 산행속도가 빨라 먼저 가라고 길을 비켜준다. 너무 처지지 않기 위해 힘을 내본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보니 마지막 구비길이 바로 코앞이다. 다왔다는 안도감에 뿌듯하다.
허름한 대피소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따스한 물로 목을 축인다. 역시 고산에서는 온수가 최고다. 사방은 안개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고요한 산속에서 홀로 걸으며 몸으로 느끼는 기쁨은 더할 나위없다.
흐르는 땀을 추스르고 이마의 끈을 동여맨 후 산행을 계속한다. 여기부터는 평지내지 내리막으로 수월한 길이다. 벌써 날은 지는지 주위는 어둑해진다. 부지런 길을 재촉하는데 앞서간 외국인 커플을 만난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절벽아래 좁은 협곡의 물소리가 웅장하다. 내일 갈 호도협의 경관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나도 자연의 유혹에 못 이겨 사진 한 컷을 부탁해 멋진 포즈를 취해 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썩으니 영국에서 왔다고 한다.
영국에서 공부한 나로서 매우 반갑게 느껴져 말을 이어간다. 포츠머스 출신이로 한국에 와봤고 평창올림픽도 잘 알고 있다. 외국에서 이러 분을 만나면 왠지 좋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금방 친해지기 마련이니까.
정말 내리막으로 들어서니 저절로 속도가 빨라진다. 땀도 식어 몸도 차가워진다.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대장님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부지런히 걷기로 마음먹는다.
아스라이 자그만 마을이 보인다. 저기가 바로 오늘의 숙소 ‘차마객잔’이다. 고지가 보이니 안도감에 엔도르핀이 솟는다. 발이 한결 가벼워지고 신바람에 걸음이 빨라진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순간들이 슬며시 사라진다.
어느새 마을입구 오골계 농장을 지나 ‘차마객잔’이란 표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둡기 전에 인증 사진을 하나 담고 방을 배정받는다. 1호실로 세명이 자도 넉넉한 규모다. 은은하고 차분한 동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산장으로 전기담요로 난방을 대신한다. 추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땀에 젓은 몸을 따뜻한 물에 맡긴다. 상쾌 통쾌 유쾌 ‘삼쾌’가 따로 없다. 산뜻한 마음으로 간단한 빨래를 한다. 땀에 찌든 수건과 내의는 그냥 둘 수 없다. 일행이 모두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 와이파이를 시도한다. 깊은 산장이지만 잘 터진다. 기대 이상이다.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멋진 사진도 전송한다. 친구들 카톡 방에 들어가 자랑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진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진다. 얼추 8시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소주 하나를 챙겨 식당으로 간다. 대장님이 혼자 앉아 계신다. 밥상은 차려지지 않았지만 배고픈 마음에 맥주하나 시켜 소주와 섞어 마신다. 대장님은 과거 술에 속을 다쳐 절제하는 눈치다. 혼술(?)이지만 산행 후 마시는 술은 그것도 산장에서 그야말로 꿀맛이다.
얼마지 않아 일행이 하나 둘 모여든다. 저녁은 특별메뉴로 오골계백숙이다. 혜초 전용숙소라 그런지 반찬도 우리 입맛에 맞는다. 특히 버섯볶음이 맛있다고 칭찬일색이다. 게다가 가이드가 맥주를 낸다. 비행기 놓친 일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는 듯하다. 갑자기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저마다 가져온 소주를 맥주에 타서 폭탄주를 제조해 돌린다. 기름진 안주를 곁들인 건배가 거듭되면서 어색함이 사라진다.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고요해지고 차마고도에 외딴 산장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기회를 놓칠세라 회장님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제일 먼저 개인비자로 오신 대장님을 필두로 돌아가며 짤막하게 소개한다. 나도 혜초여행사를 자주 애용하여 산행하는 사람으로 소개를 대신한다.
일행 중 여성분이 2명 있는데 한분은 젊은 나이에 혼자 오지산행을 도전한 용기에 감탄하고 또 한분은 애들을 다 키우고 홀로 구미에서 오신 분으로 해외산행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두 분 모두 보통이 아닌 듯하다.
다음으로 김해에서 오신 두 분은 절친으로 평소 산행을 즐기는 분들이다. 일행 중 남성으로서 가장 젊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길을 나서는 용기가 참으로 아름답다. 끝날 때까지 어르신들을 모시겠다며 다짐한다.
끝으로 동창생 5명이 의기투합하여 산행을 도전한 어르신들 차례다. 젊은 시절 각자 교편에 종사하다 은퇴 후 모여 산행한다는 사연이 너무나 부럽고 존경스럽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인데 회장님의 영도력이 느껴진다.
나름 사연과 산행동기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한잔 두잔 거듭되니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고 밤은 깊어간다. 밤새 나누고 싶으나 내일의 산행을 위해 아껴둔다. 저마다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긴 하루의 끝이다.
한잠을 달콤하게 자고 나니 새벽이다. 날씨가 궁금하여 밖에 나가보니 별은 보이지 않고 잔뜩 흐리다. 오늘도 큰 기대는 멀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잠을 청한다. 따뜻한 물 한 모금으로 속이 달래며 스르르 잠에 빠진다.
밖은 아직도 컴컴한데 창틈으로 스며드는 불빛에 일어나 본다. 물을 얻으려 주방에 가보니 아침 준비가 한참이다.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빵을 만들 모양이다. 어제 먹고 싶었던 메뉴라 기대가 된다.
하지만 먼저 속을 달래기 위해 따스한 물로 방에서 포트에 끓여 컵라면을 먹는다. 시원하고 칼칼하다. 산행을 위한 짐을 재정비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일행과 같이 조찬을 즐긴다. 기대했던 빵과 정성어린 반찬이 맛있다.
풍족한 조찬을 마치니 날이 밝아온다. 바람에 안개가 걷히면서 산장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설산의 위용이 장엄하다. 모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즈를 잡는다.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기회가 있을 때 사정없이 셔터를 누른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언제 다시 오겠냐고 후회없는 한 컷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그런 즈음 출발시간이 다가온다. 재차 배낭과 물을 챙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평탄한 길로 유유자적 노니는 일정이다.
마을을 벗어나 포장길이 시작되고 어느새 산허리 길로 이어진다. 몸은 조금 무겁지만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삼삼오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며 이바구(?)를 즐긴다. 어제보다 훨씬 친해진 분위기다.
산허리를 하나 돌면 또 다른 허리 길로 이어지고 발 앞에 펼쳐지는 마을은 그야말로 평화 그 차체다. 눈은 절로 시원해지고 몸은 자연의 품속으로 동화되는 순수 정화의 세계다. 이게 그토록 원하던 ‘샹그릴라’인가 싶다.
가는 길에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Halfway 20분이라는 글이다.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중도객잔’에 도착해 깨닫는다. Halfway는 중도라는 의미로 목표지점까지 반 정도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중도객잔 전망대에 올라가 포즈를 취하여 인증 샷을 남기고 주위 경관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파노라마를 즐기고 있는데 가이드가 서두른다. 차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길을 나선다. 조금 서운하다.
다시 길을 나서 ‘장선생객잔’을 향한다. 오른쪽으로 구름이 쉬어가는 설산을 바라보며 산허리를 휘감는 길을 내딛는다. 날씨는 화창하지는 않지만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과 계곡의 장관이 산객의 피로를 씻어준다.
걷다가 절벽이나 기암괴석이 나타나면 영락없이 포즈를 잡고 여유를 부리면서 천국의 오솔길을 마음껏 즐겨 본다. 앞선 일행들의 포효가 들리더니 하얀 물줄기를 내뿜는 폭포가 아스라이 다가온다.
일명 ‘관음폭포’에 이르니 시원스레 내리는 물줄기에 탄복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포즈를 취한다. 산행 중 만나는 물줄기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폭포를 뒤로하고 한참을 걷다보니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폭우는 아니지만 배낭커버를 씌우고 걸음을 재촉한다. 후미에서 따라가는 편인데 선두는 벌써 아득하다. 지루한 틈을 타 김해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뒤 녹음된 색소폰 연주를 튼다. 척척한 비오는 날씨에 색소폰 소리가 잘 어울리는지 죽인다고 칭찬 일색이다. 괜히 우쭐해진다.
내리막길로 이어지더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거의 다 온 모양이다. 바람도 제법 불어 쌀쌀해진다. 부지런히 내려가니 갈림길에서 가이드가 기다린다. 혹시 길을 잃을까 걱정한 듯하다.
가이드 안내로 객잔으로 향한다. 지름길로 왔는지 ‘장선생객잔’ 이정표에서 일행을 만난다. 일행들은 돌아왔다고 불만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대신하며 객장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비는 어느새 그쳐 다행이다. 객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 소주를 꺼내줘 반주를 즐긴다. 이제는 중국음식에 적응이 되었는지 거리낌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순발력이 대단하다.
배를 채웠으니 움직여야 한다. 오늘 일정의 절정인 ‘중호도협’까지 가파르게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험난한 코스가 기다린다. 무거운 배낭을 놓고 가벼운 옷차림과 스틱으로 나선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데 끝이 없다. 얼마나 내려가야 고대하던 협곡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올라 올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려갈수록 물소리를 점점 크게 들려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지만 쉬이 보이지 않는다.
급격한 경사를 내려가 물건 파는 간이매점도 지나쳐 드디어 협곡 사이로 흐르는 누런 물줄기가 보인다. 빨리 가보고픈 마음에 걸음이 빨라진다. 일행 한분은 벌써 구경을 마치고 올라온다. 대장님이다.
멀리 ‘중호도협’ 주위를 오가며 구경하는 일행 모습이 보인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재빨리 동참하여 사진 찍고 거대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자연의 힘을 체감한다. TV에서 보던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기쁨은 잠시 내려온 길을 올라야 한다. 단단히 마음먹고 걸음을 내딛는다. 얼마지 않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워낙 경사가 급하니 숨도 차다. 그래도 땀을 내니 시원한 면도 있어 위안으로 삼는다.
무아지경으로 오르는 일에 열중하니 목표가 지척이다. 앞선 일행이 후미가 걱정되어 기다린다. 깊은 배려에 감사한다. 뒤처진 일행을 걱정하는 의리에 힘을 내보는 후미는 동행의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객잔에 도착하니 선두가 반겨준다. 배낭을 찾아 간단히 수돗물에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틈새를 이용해 와이파이로 사진을 전송하며 휴식을 즐긴다. 이런 오지에서도 와이파이라니 놀랄 일이다.
일행 모두 무사히 도착하자 지프차에 분승하여 어제 출발한 지점으로 이동한다. 같은 길은 아니나 걸어온 길을 차로 이동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틀간 걸은 길을 단지 몇 분에 도착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사람의 발이 위대하다.
마침 토요일이라 가는 길가에 관광객이 지천이다. 특히 ‘상호도협’에 사람이 들끓는다. 우리도 내려가 보자고 농담을 건네 보지만 회장님만이 동조한다. 전정 사진 찍기 좋은 곳은 ‘상호도협’인데 정말 아쉽다.
버스로 갈아타고 ‘여강’ 시내로 향한다. 마사지 받고 저녁을 먹기 위함이다. 다시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된다. ‘차마고도’는 운남성과 티베트의 교역로로 메밀을 전수하고 차를 나르는 것으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티베트족들이 보이차를 상용하는데 특히 야크 젖에 넣어 ‘수유차’를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운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비롯한 염소, 야크가 오가면서 생긴 길이 바로 ‘차마고도‘라 한다.
가는 길도 어김없이 여권을 검사하고 통과한다. 여기저기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여강’에 진입하자 가이드는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여강’은 지진이 나서 97년도에 재건한 도시로서 원주민인 ‘나시족‘이 살고 있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도시다.
현지 버스비는 1위안이고 교통카드를 사용하면 20% 할인해 준다고 한다. 최근 전동자전차가 인기라 70만원이면 구입하고 면허가 필요 없다고 한다. 점점 자본주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시내 중심거리는 정부의 관리가 철저해 깨끗한 관광도시로 손색이 없다.
전신마사지로 90분을 받고나니 시원하고 개운하다. 중국에 오면 늘 거치는 코스지만 오늘은 왠지 더욱 상쾌하다.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셔서 그런 듯하다. 이 기분으로 모두 삼겹살을 즐기러 ‘백운정’으로 간다.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다. 삼겹살은 무한리필인데 술은 테이블당 한 병으로 제한한다. 그것도 백주로 말이다. 내일 높은 산행을 위해 자제하라는 말인데 그래도 뭔가 섭섭하다. 술 한 잔에 지글지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먹는 식도락은 현지에서도 변함이 없다. 의지의 한국인이다.
아쉽지만 된장찌개를 곁들인 식사로 마무리하고 호텔로 향한다. 방을 배정받은 일행들은 ‘여강고성’의 찬란한 야경을 구경하고 싶은 눈치다. 가이드는 말리지만 의기투합한다. 늦은 시간이니 바로 가자고 제안 한다.
5인방 동창과 김해일행 그리고 나 밤길을 나선다. 현지에 밝은 묘 교수님이 안내를 맡는다. 워낙 미로라 돌아올 길이 걱정된다. 호텔을 나서니 화려한 조명에 사방으로 이어지는 자그만 골목길이 이채롭다.
상점이 즐비하고 젊은이들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친다. 우리가 거닐고 즐길 곳은 아닌가 싶다. 엄청난 상권이 느껴진다. 한참 걸어 나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북문 방향으로 찾아간다. 묘 교수님의 안내에 따를 뿐이다.
이름 모를 넓은 광장에 이르니 인파가 대단하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에서는 젊은이들의 춤이 한창이다. 어디가나 밤 문화는 화려한 법이다. 방향을 바꿔 길 가운데 흐르는 수로를 따라간다. ‘여강’의 참모습이다.
또 다른 광장에 도착하니 야경이 더욱 화려하다. 저마다 인증 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 분위기에 잠시 젖는다. 피곤함이 느껴지는지 찻집을 찾는다. 어렵게 주문하고 이층에 자리를 잡는다. 창 너머 고택처마의 야경이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카메라에 옮겨보지만 내 눈을 못 따라간다.
사실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집을 찾았지만 눈 씻고 봐도 없다. 차가 나오는 시간에 나는 가져 간 소주를 몰래 꺼내 마신다. 참한 야경을 안주로 마시는 소주는 처음이지만 낭만적이다.
기다린 끝에 차와 먹을거리가 나오자 음미한다. 해외 찻집에서 차를 마셔본 경험은 없어 종업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마신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차가 목젖을 넘어가니 마신 소주가 화답한다.
찻집을 나와 호텔로 향하는데 예상대로 헤맨다. 공안에게 몇 번을 물어봐 간신히 방향을 찾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간 데로 또 간다. 재차 방향을 돌려 찾아온다. 미로는 역시 미로다.
피곤이 몰려와 슈퍼에서 캔 맥주 하나 사서 방으로 들어온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빨래한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잠을 청한다. 근데 타는 냄새가 난다. 실내등에 수건을 걸어놓은 것이 문제다. 얼른 물에 적셔 버린다. 큰일 날 뻔했다. 체크 아웃할 때 20위안을 물어줄지 꿈에도 몰랐다.
새날이 밝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로는 12시경 갠다고 했는데 그럴지 의문이다. 기대반 걱정반 조식을 먹는다. 일요일이라서 담당 직원이 늦어 달걀프라이는 서비스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대충 때우고 산행준비를 해서 버스에 오른다. 옥룡설산 풍경구로 이동하는 내내 비는 내린다. 가는 길에 소를 치는 사고를 목격한다. 가이드는 엄청난 돈을 배상해야 한다면서 여기선 야크 값도 800만원이라 너스레를 떤다.
풍경구 입구에서 여권검사를 마치고 도착해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이미 날씨는 포기한다. 쏟아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런 날씨에도 현지 관광객은 밀물처럼 밀려든다. 모두 빨간 외투를 걸친 게 독특하다.
케이블카를 타러 이동하는데 현지인들은 저마다 산소통을 챙긴다. 고산병에 대비하는 듯하다. 일행은 누구도 산소통을 사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산행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 믿는다.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데 추위가 엄습한다. 재빨리 털모자를 꺼내 써서 체온을 보존한다. 차례대로 타고 보니 곤돌라다. 그것도 창문이 없는 개방형이라 바람이 솔솔 들어와 춥다. 장갑도 낀다.
회장님과 동승하여 이런저런 산행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함을 달랜다. 비는 잦아들고 가끔 햇살이 비추어 희망을 노래한다. 곤돌라는 해발 3,500미터 ‘모우평’에 이른다. 기대했던 시계는 제로다. 사방이 안개속이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샹그릴라 풀코스를 시작한다. 여기부터 산행 가이드 2명이 추가 투입된다. A코스와 B코스를 대비한 조치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떼로 지나간다. 아마 일요일 탓인가 보다. 라마교를 상징하는 사원을 지나 평원 길로 이어진다. 언덕위에 펄럭이는 오색기가 무사 산행을 기원해준다.
중국인들은 왼쪽 전망대로 올라가고 일행은 직진하여 야크목장을 지난다. 해발 3,600미터로 100미터 올랐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야크는 열심히 풀을 뜯는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 한 장 찍어본다. 참으로 평화스런 광경이다.
서서히 숨이 차고 땀도 난다. 자기 페이스대로 천천히 걸음을 유지하면서 고도에 적응한다. 해발 3,650미터 ‘신수’라는 곳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따스한 물도 마시며 체온을 유지한다. 그런데 현지가이드는 시간만 나면 담배를 입에 문다. 이 높은 곳에서 흡연 이해 못할 일이다.
고산증세를 보이는 일행이 없어 다행이다. 서로 부추기며 걷는 가운데 정이 돈독해진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일행의 우산을 빌린다. 가이드가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을 보고 따라한다. 훨씬 낫다.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산야목장’에 도착한다. 목장 대피소에서 이미 불을 피우고 누룽지를 끓인다. 날씨가 좋으면 옥룡설산의 자태가 훤히 드러나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아니다. 모두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큰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다. 계속 산을 탈지 또는 하산할지 말이다. 일단 점심 먹고 결정하기로 한다. 따스한 누룽지로 속을 채운다. 비오는 날씨에 어울리는 메뉴다. 갑자기 밖이 궁금해 뛰쳐나간다.
잠시나마 짙은 안개가 바람에 날려 설산의 위용이 보인다. 일행들 모두에게 나와 보라고 소리친다. 다들 후다닥 뛰쳐나와 설산의 장관을 보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그렇게 고대했다는 반증이다.
점심 후 마음의 갈등이 파도친다. 비는 멎고 간헐적으로 햇빛이 보이더니 하늘이 베껴진다. 일단 해발 3,800미터 ‘설산소옥’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서 A조와 B조를 나누자는 게 대세다.
‘산야목장’을 벗어나 원시림으로 들어선다. 떼 묻지 않는 자연그대로의 숲길이다. ‘운삼원시림‘이라 하는데 그 의미는 잘 몰라도 안개가 자욱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아름다리 나무와 이끼가 조화를 이루는 신비스런 곳이다.
원시림을 지나 힘든 오르막을 제치고 나이 조그만 오두막이 반긴다. 혜초 트레킹 현수막이 선명하게 보인다. 순간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노니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를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를 눌러댄다.
정오 무렵 날씨가 갠다고 하더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설산의 자태도 제대로 뽐낸다. 모두 감동과 탄복을 연발하면서 최대한 멋진 포즈를 취하여 자연을 만끽한다. 오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했을 것이라고 자평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하늘과 설산을 감상하니 시간가는 줄 모른다. 슬슬 가이드가 눈치 준다. A코스를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설왕설래 끝에 두 조로 나눈다. 역시 대장님과 회장님, 여학생(?) 그리고 나 4명이 A코스로 나서고 나머지는 파노라마 B코스를 택한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A코스로 접어드는데 급경사가 이어진다. 사방은 다시 안개로 휩싸여 시야는 하얗다. 숨이 헉헉 차고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그래도 대장님은 거침없이 오른다. 그 뒤를 여학생이 따른다. 대견하다.
빡센 오르막이 계속되면서 회장님과 나는 좀 처진다. 뒤에 가이드가 따라와 위안이 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 만’을 수없이 되뇌며 걸음을 재촉한다. 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이왕 시작한 거 4,000미터는 찍고 가자는 의견이다.
고된 역경 끝에 찾는 기쁨은 달콤한 법이다. 지그재그로 얼마나 올랐을까 대장님과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표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헉헉되는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곳이 해발 4,060미터 ‘女神洞’이다.
‘여신동’ 표지판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고 하산하기로 한다. 더 이상 가도시계가 나빠 소용없다는 결론이다. 해발 4,300미터 ‘설련대협곡’이 궁금하나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즐기는 겸허함이다.
따뜻한 물로 몸을 덥히고 하산을 시작한다. 급경사를 차근차근 내려오면서 여기를 어찌 올라왔나 뿌듯해진다. 작은 발걸음의 누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여전히 기상은 안개속이다.
한참을 내려와 잠시 틈을 내서 설산을 배경으로 풀밭에 누워본다. 물기로 차가움이 스며들지만 지금 못하면 섭섭할 것 같다. 여학생도 해보고 싶다며 요염한(?) 자세를 취한다. 물론 카메라에 풀 샷으로 잡는다.
안개 속을 거니는 한적함과 홀로 느끼는 여유로움이 너무 좋고 간혹 산세조망을 내주는 자연에 감사하며 내려오는 길은 심심치 않다. 이제는 내리는 빗물도 동반자로 여겨져 운치를 더하는 멋을 부린다.
선두로 가는 대장님은 보이지도 않는다. 빠른 속도로 내려오니 두통이 찾아온다. 약한 고산증세다. 애써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즐긴다. 이럴수록 천천히 걸어야 한다. 여학생과 조우하여 담소하며 걷는다.
넒은 평야지대를 건너 ‘모우평’이 보인다. 오른편으로 B코스 일행이 보인다. 반가운 인사를 하며 A코스 경관을 묻는다. 진짜 안가기를 잘했다고 말하며 B코스의 파노라마가 부럽다고 치부한다.
샹그릴라 산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를 축하라도 해주듯이 왼편으로 산세를 휘감는 무지개가 뜬다. 비 갠 후 햇빛이 반사되어 생기는 현상이지만 아무쪼록 너무 고맙고 찬란하다. 소리쳐 화답한다.
배낭을 정비하고 곤돌라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셔틀을 탄다. 사람이 차야 떠날 모양이다. 땅콩과 따스한 차로 시장기를 모면한다. 무작정 기다리는데 웨딩촬영을 마친 현지인을 목격한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안타깝다.
체온유지하기 위해 털모자를 쓰고 출발을 기다린다. 드디어 사람이 꽉 차자 셔틀버스가 움직인다. 한참 돌고 돌아 내려와 전용버스로 갈아탄다. 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오히려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젠 폭우가 쏟아져도 걱정이 없다. 호텔로 서둘러 귀환한다. 따뜻한 물에 샤워가 그립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정리하고 샤워부터 한다. 찌든 땀과 고산의 두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천국이 따로 없다.
소주를 빼놓지 않고 호텔식당으로 간다. 즐거운 식사가 시작된다. 대장님이 갑자기 ‘삐저우 우삥’이라 소리친다. 맥주 5병을 주문한 거다. 소주를 타서 건배를 한다. A코스와 B코스의 무용담이 오고간다.
여학생이 메모지를 돌려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카톡방을 개설할 모양이다. 이제 카톡 방장님으로 불려야 할 판이다. 가이드 제의로 내일 ‘수허고성’을 일정에서 빼기로 하고 개인시간을 갖는다.
대장님과 나는 이미 샤워를 했기에 로비에서 우산을 빌려 주위를 산책한다. 어제 걸은 길이지만 사뭇 한가하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가보다. 한 바퀴 둘러보지만 갈만한 곳이 없다. 그냥 호텔로 돌아가기로 한다.
슈퍼에서 맥주하나 사서 방으로 들어와 간단히 세탁하고 정리한 후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반추해본다. 가족과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오늘로서 산행은 끝이고 내일부터는 관광이다. 단잠을 청한다.
‘여강’의 아침이 밝는다. 선선하지만 날이 좋다. 조찬 후 주위를 둘러본다. 파란하늘이 선명한 쾌청한 날씨다. 어제 이랬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이미 지난일로 잊어버리고 오후 인상공연을 기대한다.
짐을 로비에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여강고성’을 관광한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가니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석류정’이라는 곳에 멈추더니 물이 고인 세 구덩이를 가리킨다. 첫째는 음료 둘째는 야채 셋째는 세탁하는 물로 설산 물이 수로를 따라 내려와 자연적으로 순환되는 시스템이라 말한다.
또한 ‘나시족’의 상형문자가 그려져 있는 곳에서 남녀, 배고픔, 임신, 가족, 강산 등을 표현하는 문자를 일일이 예를 든다. 신기하면서도 기특하다. 북문광장에 이르니 ‘나시족’ 할머니들의 춤판이 벌어진다.
한 시간 가량 자유 시간이 있어 잠시 바라보다 설산이 보일 것 같은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망고루’라고 곳으로 무작정 따라간다. 멀리 설산이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한다.
일행 모두 같이 오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묻어난다. 혼자라도 파란하늘에 멋지게 뽐내는 설산과 시내전경을 굽어보면서 최대한 카메라에 성심껏 담아본다. 역시 내 눈만큼 훌륭하지 않지만 만족한다.
전망대를 내려오면서 광장에 이르니 아직도 춤판이 계속된다. 재빨리 근처 가게에 들어가 치킨스낵을 사와 나눠 먹는다. 제법 맛이 괜찮다. 가이드가 다음 행선지인 ‘흑룡담’으로 이끈다.
조금 걸어가니 호수가 나타나고 그 끝에 설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호수에 떠있는 설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다. 기막힌 날씨에 절경이 더하니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사진이 따로 없다. 즐거운 한때다.
북문으로 나와 공연을 보러 다시 풍경구로 향한다. 길 왼편으로 어제 못 본 설산모습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산신령이 살 것 같은 분위기다. 여권을 검사하고 가는 길에 ‘감해자’라는 곳에 잠시 내려 기념사진을 찍는다.
현지인도 많이 보인다.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존인가 보다. 한쪽은 뚜렷한 능선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 지평선이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마주한다. 가히 비할 수 없는 장관이다. 예서 머물고 싶은 심정이 절실하다.
가이드의 말로 풍경구에서 일하는 분들은 수당도 높고 명절이면 선물을 꼭 받는 특혜가 주어져 평생직장으로 손색이 없단다. 관광을 전공하고 여기에 입사하는 것이 로망이고 다양한 직무를 경험할 수 있단다.
어느덧 공연 장소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향한다. 어김없이 원탁에 둘러앉아 소주를 반주로 점심을 먹는다. 중국 식단을 대하는 자세가 현지인과 다를 바 없다. 화창한 날씨에 멋진 공연을 기대한다.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공연장으로 들어선다. 좀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한눈에 무대를 바라 볼 수 있는 자리를 잡는다. 여학생도 따라와 바로 앞자리를 차지한다.
장대한 무대규모에 놀라고 설산을 배경으로 공연을 펼치는 자체에 중국이 느껴진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12개 소수민족 소개와 함께 수백명이 일시에 등장하는 장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공연 내용은 총 5개로 구분된다. 먼저 차를 따서 말에 싣고 ‘차마고도’를 오가며 돈을 번 다음 축주가로 음주파티를 즐기고 짝을 찾아간다. 다음으로 공연의 절정인 연애이야기인데 부모의 허락이 없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던지는 슬픈 내용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으로 신들에게 풍요를 기원하고 축복을 내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사내들이 말 타고 소리를 지르며 무대를 달리는 격렬한 장면과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전통의상을 입고 나란히 도열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500명의 배우가 연출하는 공연은 과연 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다. 장가계에서 본 공연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청명한 날에 화려한 공연과 설산의 모습을 당분간 잊을 수가 없을 듯하다. 나름 카메라에 담아보고 동영상으로 옮겨보지만 양이 차지 않는다. 산행은 안개 속을 걸었으나 공연만큼은 그 어느 것 하나 티가 없을 정도다.
멋진 공연을 감상하고 ‘옥수채’라는 곳으로 이동한다. 가이드는 옥룡설산의 유래를 얘기한다. 위에서 보면 8마리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란다. 최고봉은 ‘선자봉’ 5,596미터로 부채모양이고 아무도 정복하지 않는 처녀봉이란다.
‘옥수채’에 들러 설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손을 씻어 액을 지우고 자연신이 모신 곳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 ‘동파묘’에 가니 하늘, 땅, 사람, 채소, 물을 의미하는 오색기를 두른 비석이 우뚝서있다. 신비로운 수호신이다.
나오는 길에 야크가 두 마리 보인다. 올라타고 사진을 찍는데 10위안이다. 재미삼아 일행들과 찍어본다. 동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하늘에 층층구름이 한가로이 떠가는 모습에 모두 감동한다.
점점 시간 때우는 관광이 지루해진다. 고대벽화인 ‘백사벽화’를 보러 간다. 불교벽화로 인조사진이고 진품은 다른데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금칠로 묘사하고 자연색소를 이용한 500년전 명나라 시대 그림이다.
비행기 타기 전 이른 저녁을 위해 식당으로 간다. 도착하자마자 대장님의 멘트인 ‘삐저우 우삥’을 내가 외친다. 다들 한바탕 웃는다. 숨기던 약(?)까지 꺼내 맥주에 섞어 마신다. 맛보기로 나온 버섯과자가 일품이다.
가이드가 오더니 맥주 3병을 추가해 행운의 숫자인 8병을 채운다. 마지막이라며 헤어짐이 섭섭하여 드리는 선물이란다. 이제까지보다 좀 나은 반찬이 나와 즐겁게 먹는다. 맥주를 해치우려니 안주가 부족하다.
입구로 가서 버섯과자를 흥정한다. 중국말을 모른 나로서 옥신각신 간신이 깎아 한통을 사온다. 한국 스타일로 맥주에 딱 맞는 안주다. 맥주를 깨끗이 비우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가이드와 이별하는 순간 비보를 전한다. 한 시간정도 지연된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올 때를 생각하면 참을만한 수준이라 넘긴다. 그런데 막상 게이트에 도착하니 얼마나 지연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작정 기다리란다. ‘사천항공’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다. 일행과 수다와 잡담으로 지루함을 달래고 찐빵과 만두를 사서 먹기도 해보지만 기약 없는 시간이 야속하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와야 그나마 안심이다.
점점 진이 빠지고 모든 걸 내려놓을 쯤 탑승안내가 나온다. 오늘 중이라도 뜨는 게 어디냐며 비행기에 오른다. 약 3시간 지연이다. 비행기가 뜨고 잠시 성도에 도착한다. 벌써 한밤중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올 때 큰 사고 친 가이드를 다시 만나니 반갑고도 머쓱하다. 늦은 시간이라 재빨리 공항을 빠져나가 버스타고 호텔로 향한다. 우리에게 성도 도착시간은 새벽 한 시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바로 앞 야시장이 성업 중이다. 눈에 번쩍 띄어 대장님과 한잔을 약속한다.
비즈니스호텔로 시설이 양호하다. 짐만 들여다 놓고 대장님과 야시장으로 향한다. 늦은 시간에도 손님이 많다. 맥주와 꼬치를 시켜본다. 꼬치가 너무 짜서 볶음면도 주문한다. 오히려 볶음면이 안주로 썩 잘 어울린다.
산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목을 적신다. 야밤 출출하던 차에 딱 좋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나 보다.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잠을 청한다.
마지막 날이 밝는다. 오늘은 오전에 관공하고 귀국하는 일정이다. 호텔에서 조식 후 유비와 제갈량의 묘가 있는 ‘무후사’로 향한다. 대도시 러시아워가 시작되고 교통체증과 공사판으로 장난이 아니다.
미세먼지와 뿌연 하늘이 어제와는 딴판이다. 가이드 안내로 ‘무후사’를 둘러보고 ‘금리거리’로 이동한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라서 큰 흥미가 없다. 그냥 시간 보내는 일정으로 이해한다. 학구적으로 연구하는 일행이 존경스럽다.
‘금리거리’로 옮기자 카페에 앉아 대장님과 맥주를 주문한다. 오가는 사람을 보며 마시는 맥주도 색다른 맛이다. 김해 일행도 동참한다. 근처 가게에서 강정을 사와 곁들인다. 여행 끝을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그야말로 마지막 코스인 ‘약선요리’를 먹으러 걸어서 이동한다. 품격 있는 식당으로 다양한 요리가 차례로 나온다. 특이한 약주도 제공한다. 등산복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수다를 떤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넉넉하게 즐기는 오찬이다. 다시 항공기 지연이 없기를 기원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고 회장님을 필두로 비자 순서대로 출국수속을 마친다. 이상하게 지연소식이 없다. ‘사천항공’ 같지 않다. 수속 중에 우연히 중국유학생 ‘주문빙’을 알게 된다. 아는 교수명을 물어보니 강의를 들었다며 반가워한다. 박사학위를 무사히 마치기를 바란다며 헤어진다. 세상은 참으로 좁다는 사실에 실감한다.
게이트에 도착해 비행기를 기다린다. 정상출발을 기념하여 즉석 맥주파티를 벌인다. ‘눈물의 라면땅’과 ‘보름달 빵’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제시간에 출발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오히려 인천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다. 대장님에게 맡긴 스틱을 찾아 서둘러 귀가한다. 지방으로 가는 일행이 살짝 걱정되지만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결국 비행기 지연으로 시작해 지연으로 이어지는 어려움과는 대조적으로 성품이 훌륭한 일행들과 멎진 추억을 담는 산행으로 기억하고 싶다.

평점 3.2점 / 5점 일정3 가이드2 이동수단3 숙박4 식사4
정보
작성자 김*화
작성일 2018.10.29

안녕하세요 호도협 담당자 김정화입니다.
먼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상세한 상품평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도협 옥룡설산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저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만족스러운 여정이였으나 성도 가이드로 인해 불쾌함을 느끼셨던 점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해주신 정황을  카톡으로 미리 전달 받아 일정이 큰 차질이 없도록 계속 예의주시하였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현지 가이드에 대해 필히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말씀 참고하여, 앞으로 더 나은 혜초여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시고 더 좋은 여행 만들수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15,000P 를 적립해드릴 예정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