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킬리만자로(5,895m)트레킹+세렝게티 13일(2012.1.13~25.)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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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종 |
작성일 | 2012.02.08 |
1월 19일 목요일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채 아침이 되어 가이드가 차를 가지고 왔다.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니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영어지만 나는 지금 최상의 컨디션이며 내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내 일생에 있어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설명하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extra charge를 달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으니 가이드, 쿡, 포터 3명이 따라가야 하니 300달러를 내라고 했다. 난 포터와 쿡은 필요 없고 가이드 한 명이면 된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200달러를 달라고 했다. 나는 좋다고 말하고 동료에게 돈을 맡겨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나중에 동료를 만나면 그때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준비된 게 있냐고 물었더니 빵이란다. 잠시 후에 그는 식빵 두 조각과 계란 후라이 하나를 가져왔다. 나는 홍차 한 잔을 타서 샌드위치와 함께 먹고 난 다음 짐을 꾸렸다. 가이드가 와서 말하길, 정상에 가 있는 리더와 통화를 했는데 침낭을 준비하라고 해서 침낭을 내어 주었다. 점심으로 식빵과 잼을 준비시키고 물 두 병을 배낭에 챙겨 넣고 잡주머니에 사탕과 초콜릿을 옮겨 담았다. 고산증은 완전히 해소된 듯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8시 5분, 호롬보산장을 출발하여 가이드를 따라 열심히 올랐다. 어제와는 영 딴판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키보산장에 도착하니 11시 45분이 되었다. 그곳 숙소에서 반갑게도 휴식중인 우리 팀을 만났다. 창윤이도 보였다. 혹시 고산증으로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미 정상은 다녀온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 대원들은 이미 우후루피크를 다녀와 쉬는 중이었고, 여자 대원 세 명과 원징이만 지금 내려오고 있는 중이란다. 가이드가 갖다 준 멀건 누룽지와 망고 주스 한 잔을 먹고, 12시 15분에 대원들과 헤어져 키보산장을 출발했다. 정상까지 목표는 5시간 안에 오르는 것이다. 잔자갈로 덮인 완만한 경사의 너덜지대를 오르다 누나와 김명숙 선생님을 만났다. 누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뭐 하러 다시 왔냐며 나무라셨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생이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이다. 난 누나가 좋다. 항상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에 함께 오게 되어 너무도 행복하고 좋다. 완만하던 길이 점점 가팔라지고 바닥은 흙과 자갈로 덮여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빠지며 밀려난다. 헛심 팽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한참을 올라가다 원징이 부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길이 가파르다 보니 지그재그로 오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가다가 배가 고파 식빵과 잼을 달라고 했다. 식빵 한 조각에 잼을 발라 물과 함께 먹었다. 딸기잼이 별로다. 잘 펴지지도 않고, 덩어리째 빵 위를 굴러다닌다. 어젠 고산증으로 쫄딱 굶고 오늘 먹은 것도 변변치가 않다. 20분 오르고 30번 큰숨 쉬기를 반복했다. 가능한 위는 쳐다보지 않았다. 위를 보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가질 것 같아 힐끗힐끗 위를 보며 가이드 발뒤꿈치를 따라 올랐다. 어느새 한스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다시 식빵 한 조각을 먹고 출발했다. 이제 더덜지대는 거의 끝난 모양이다. 돌길이 이어진다. 키보를 출발한 지 3시간 40분 만에 드디어 길만스포인트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분화구가 내려다보이고 저 너머 만년설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금방이라도 오를 것 같다. 눈과 얼음길을 엣지스텝으로 조심스레 올랐다. 자칫 미끄러지면 낭패다. 저 아래 계곡으로 미끄러져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가이드도 잔뜩 긴장한 듯했다. 한참을 더 오르니 스텔라포인트다. 이제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흙길을 오르다 정상 가까이에서 윈드재킷과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입었다. 마지막 어렵지 않은 길을 따라 오르니 저 앞에 정상 표지판이 보인다. 5,895m 우후루피크에 오른 시각이 오후 5시 15분이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정상은 흙으로만 덮여 있었다. 만년설은 저 아래 단애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과거에는 정상까지 만년설이 덮여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의 눈은 녹아 없어지고 주변의 만년설은 정상을 벗어나 아래쪽으로 서서히 밀려난 것 같다. 오히려 정상보다 저 멀리 단애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이 많다면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해가 질 것이다. 잘못 지체하다간 내려가는 눈길에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하산을 시작하여 쉬지 않고 스텔라포인트를 지나 길만스포인트에 도착했다. 식빵 한 조각을 먹고 곧 어두워질 것에 대비해서 헤드랜턴을 준비했다. 가이드가 여분의 배터리가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하니 달라고 한다. 다행히 키보에서 정길이가 준 배터리가 있었다. 하산을 시작하여 너덜지대로 들어설 즈음 다시 구토가 나왔다. 직전에 먹은 빵을 모두 토해냈다. 그렇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몸은 그럭저럭 움직일 만했다. 다시 출발하여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스키를 타듯 신나게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급경사를 거의 다 내려올 때쯤 어둠이 짙어졌다. 그제야 랜턴을 켰다. 키보산장에 다다르니 저녁 7시 30분이 되었다. 내려오는 데 불과 1시간 55분이 걸렸다. 고산증이고 뭐고 오로지 빨리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포터들이 쉬는 쉼터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기름 냄새가 지독했다. 망고 주스 두 잔을 먹고 잠시 쉬다가 저녁 7시 53분에 산장을 출발했다. 이제 호롬보까지는 9.26km의 편안한 하산길이다. 굴러가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체력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까지는 잘 버텨 주었는데 말이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구토가 나왔다. 모두 토해낸 후 다시 랜턴을 켜고 걷고 또 걸었다. 배고픔도 잊고 오직 빨리 내려가 오늘의 고행을 끝내고 싶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낮에 오르다 보았던 마지막 샘터가 나왔다. 호롬보산장에 가까워지니 다른 포터 2명이 마중을 나왔다. 이곳 포터들의 세계도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는 것 같다. 선배들의 배낭을 받아 들고 앞서 내려간다. 호롬보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25분이 되었다. 우리 팀 숙소를 찾아 대충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물 한 잔 먹지 않았는데도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런데 우스운 건 두 번이나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갔다. 산장 모양이 비슷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 둘이서 자고 있는 방이었다. I'm sorry! 하고는 얼른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