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Silkroad 기행문-5(가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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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균 |
작성일 | 2009.05.15 |
아침 9시반에 嘉욕關 역에 도착하니 40대 중국인 가이드 아줌마가 마중을 나와 유창한 영어로 안내를 한다. 놀란것은 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하는데 놀랄 정도로 잘한다. 일행중 영문학 전공인 여교수님이 계셔서 통역의 수고를 해주시니 천만 다행이다.앞서 달려온 하서주랑의 가장 병목인 곳에 萬里長城의 끝이요,西域으로 가는 길목인 중국 제1관문인 嘉욕關에 도착한다.둘레가 733m ,높이가 10.7 m 의 漢나라 때에 세우고 明나라때 개축했다는 성의 위용이 대단하다.여기에도 성 내부 대문 중에 하나가 光化問이다 酒泉박물관에 들려서 唐나라때의 티베트어로 쓴 佛經을 보면서 이를 그 옛날에 한문으로 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더구나 심오한 철학이 담긴 내용을... 듣기만 하든 漢代의 竹簡의 실물을 보니 감개도 감개려니와 그 내용이 사회경제,민족관계,교통사회,농경등 제반분야에 걸친 기록이라니 놀랄뿐이다.다음은 走泉 丁家閘 5호묘(지하 12 m 에 있으며,천상계,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3단 벽화로 유명)를 구경하고 오후 2시반에 敦惶을 향해 무시무시한 고비사막을 지나 10시간 넘게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단다. 도로공사중이라 장담을 할수 없다고..이곳은 옆동네 가는 것이 천리 인가보다.사막이라 그레이드로 밀기만 하면 임시도로다.앞차와 가까워 지면 모래먼지가 안개가 되어 앞이 안보인다. 버스기사도 옛날 우리 처럼 빨리 달리려고 추럭을 추월하다보니 파인 길을 지날때면 엉덩이가 춤을 출수 밖에 없다. 2시간 반을 달리다 보니 넓은 오아시스(자그만 도시 크기)가 나와 반갑게 내려 화장실이랑 다녀 오면서 휴식을 취한다.유료 화장실이라 다음 부터는 길가에 세우고 용무를 보자고 의견이 모아진다.여기가 玉門鎭이란다.리어카에 과일들이 수북히 싸여있고,아주머니가 와서 칼로 조각을 베어 주면서 시식을 해보란다.입에 넣으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처음이다.우리 호박과 똑 같은 색갈과 타원형인데,내부의 씨나 노란 색갈도 비슷한데,맛은 당도가 높은 메론 향과 맛,이름은 하밀(?)이라고.. 40도가 넘는 더위에 비닐하우스가 많은 것이 왠 말인가? 알고 보니 우리는 햇빛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이곳은 사막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것이다.주변에 일차로 포플라 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했지만 2차로 진흙벽돌을 반쯤 쌓아 놓은것이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고생길이지만 2년쯤 뒤면 편안히 여행할수 있을 것 같다.도로공사의 법면도 석축으로 영구적인 방법으로 공사하는 것이 옛 선조들의 만리장성 노하우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보다. 주천 아파트의 5층 아파트 옥상에 가구마다 태양열 집열기가 올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고비사막 한가운데 풍력발전 풍차가 수없이 널려있다. 고장난 풍차가 있나 눈여겨 찾으려고 해도 얄밉게도 모두 다 잘 돌아간다. 작년 겨울에 추풍령 휴게소에 서있는 흉물스런 풍차가 떠오르자 에너지에 관해서는 이곳이 소득 400불의 낙후 시골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위정자들도 한번 보고 느껴야 할 것이다. 고비사막 한가운데서 휴대폰으로 서울 집에 전화를 통화해보다.물론 감은 서울서 하는 것과 똑 같다. 옛날 혜초스님이나 현장 법사의 고행길을 찾아 나섰지만 현대의 물질문화와 당시의 차이를 실감한다. 낙타가 자라서 자동차가 되었고,오아시스에서 물로 목을 적시는 대신 가유참에서 기름을 먹고 통에 담아간다. 결국은 밤 12시가 다 되어 최신 설비의 돈황산장에 도착하여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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