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제목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준 킬리만자로 트레킹
작성자 김*균
작성일 2018.01.11


12.22 / 1일차

 

17:50 에 택시를 타고 산본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바로 18:20에 인천행 버스가 출발했다.   
지난 추석 때 록키 갔다온 이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달도 채 안되어 킬로만자로 트레킹을 예약해 버렸다. 평소 마음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나 자신도 의외였다.   
   
년말 행사들을 모두 11월 마친 후 12월은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고자 마음 먹었지만 역시나 또 다른 일들이 생겨 이번주 3일이나 술을 마셨다.  준비는 커녕 더 몸을 학대 했으니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지난번 EBC 처럼 중도 하차는 절대로 하지 말자고 다짐하건만 몸의 신호는 알수도 없고 이기기도 힘들 것이다.  그냥 자연에 나를 맡겨 같이 동화되고자 한다.   
   
이번 트레킹의 목적을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 체력 테스트(정상 정복)   
. 욕심을 내려 놓기   
. 18’를 위한 마음 다잡기.   
    -. 사업 안정화   
    -. 음주, 골프 자제하기   
    -. 독서에 매진하기.   
   
공항가는 차가 많이 밀린다. 무려 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안에는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모습들은 모두 밝다. 여행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 했던가?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욱 더 가슴 설레게 한다. 이번 트레킹을 통해 얼마나 얻어 올지 모르지만 적지않는 돈을 들여 내가 원해서 가는 곳이라 조금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환전도 하고 햄버그로 요기도 했다. 각국의 인종들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한 인도인은 $100지폐를 가지고 $20만 환전해 달라고 한다. 결국 거절 당하고 난감해 한다.  아마 한국 식당에서도 거스름돈을 바꿔주지 않는 모양이다. 이 또한 문제가 있다. 위조지폐 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얼마든지 거스름돈을 주는 것이 당연한게 아닌가? 이처럼 개선해야 할게 참 많다.   
   
22시에 혜초여행사 코너로 갔다. 14명+인솔자 1명이 12일동안 동고동락한다. 젊은 친구 2명, 70 노인 3명, 60대 중반 부부 1쌍, 부자간으로 보이는 한쌍, 나머지는 60 전후 내 또래다.  인솔자 설명도중 옆에 앉은 분이 다리를 삼하게 뜬다. 거슬리는 눈치를 줘도 계속 뜬다. 본인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애써 외면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여 갖은 이야기들을 남기고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과정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변화를 즐기는 것은 아마 호기심 때문이리라. 특히 그 높은산(5,895m)을 힘들게 같이 올라간다는 것은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무척 기대된다.   
   
티켓을 받고 출국장을 통과했다. 면세점을 들러 아내가 요청한 선물을 샀다. 매번 나올 때마다 아예 찍어준다. 근데 이 금액들이 만만치는 않다.  여성 화장품들이 참 고가라는 것을 항상 느낀다. 하긴 내 여행경비나 술값에 비하면 당연히 적지만 아깝다라는 느낌은 당연 내 욕심이리라.   
이번 여행지는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아부다비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하여 다시 육로로 탄자니아로 들어간다. 무려 26시간의 여정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디어 출~발~~~ (00:15~)   

 

12.23 / 2일차

 

10시간 비행을 마치고 05:15(현지시간)에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시차는 5시간 이고 한국이 빠르다.   
사막을 완전히 탈바꿈시켜 현지도시로 바꾼 힘이 석유만은 아닐것이다. 100층 이상의 7성급 호텔이 있다. 여기 숙박비가 하루 5백만원이라고 들었다.  어떤 분들이 이용할 지는 모르지만 하루 $1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의 30%나 있는데...   이는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원해서지만 12일을 위해 거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 나 될까?  물론 내돈이라고 하지만 내가 순수하게 노력해서 번돈만은 아닐 것이다. 역설적으로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고 봐야겠지.   
만약 어느 조직에 있든지 최고의 년봉을 제한 한다면, 그리고 그 남는 년봉을 본인이 원하는 곳 즉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 모두 사용토록 한다면 좀 더 부의 평등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   
아니. 그럼 현재의 자본주의가 절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현 인간들의 세상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단지 시간적인 문제다. 지금 떠들고 있는 4차 혁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빨리 망할 것이다.  끊임없는 타락의 생활로 진전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무한한 창조를 한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최면속에서 자신의 명예를 얻는다. 그럼 대안은???   
이번 트레킹을 통해 즉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속물이고 나약한 것인가를 느껴볼 것이다.   
   
08:50 출발인데 안개 때문에 자꾸만 늦어진다.   
이 또한 여행의 묘미다. 즉 한치 앞을 모르는게 인간이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상대에 따라서 자연 변동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다.  만약 절대신이 있다면 이 안개를 바로 없앨수 있겠지. 현재, 과거,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아인쉬타인이 ‘인간의 뇌능력은 무한대’라고 했다. 하지만 보통 10% 밖에 못 쓴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우주의 능력은 ‘무한대의 무한대’ 일 것이다.  즉 아무리 인간이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우주 앞에서는 먼지 티끌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연해져야 한다. 겸손 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 보다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발전시키는 것이 자연에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일 것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된다. 무려 한시간의 기다림이다. 비행기가 만석이다. 중동인, 백인 흑인 다양하다. 동양인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역시 산행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내 방송중 영어 발음이 많이 다르다. 매우 빠르고 부정확했다. 인도 발음이 응얼거림이 많은데 이보다 더 하다.   
   
14:05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의 건물들이 나즈막하다. 꼭 시골공항 같다.  그래도 케냐 나이로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남아공 다음인데 좀 초라한 느낌이다.  현지 비자를 받는다. 서류와 $50 만 주면 통과다. 이미그레이션 입구가 자그만하다.  창구가 16개 정도. 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은 후 입국 허락 도장을 받았다. 짐 트렉은 4개다. 국제공항 치고는 너무 적고 공간도 좁다.  출구는 한곳인데 줄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그냥 들이민다. 짐 조사는 그렇게 심하지 않아 금방 빠진다.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훅 스친다. 온도가 섭씨 26도. 하루만에 영하 10도에서 한여름으로 왔다.  기후는 몹시 맑다.  건물들이 나름대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 공기도 신선하다. 동남아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차는 미니버스. 짐은 차 위로 싣고 베낭과 일행들만 차에 탔다. 곽 찼다. 나누어준 과일을 모두 맛있게 먹는다. 15:30 출발. 여기서 탄자니아 입구까지 또 2시간 반을 간다.   
버스 안에서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 노래가 나온다. 약 30년 전의 노래다. 그 때는 표범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과연 용필 아저씨는 그 때 여기를 다녀간 것인가?   
주변이 모두 나즈막한 들판이다. 나무들이 듬성 듬성 있고 잎들이 무성하지 못하다. 수분이 없어 모두 힘든 모습들이다. 탄자니아 국경지대 가는 길은 2차선이다. 고속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고 반듯하다. 18:00 시에 국경에 도착했다. 근데 19:30 되어서야 케냐 출국, 탄자니아 입국이 마무리 되었다. 모든 서류들을 수기로 적는다.   
탄자니아 입국시 필요한 서류는 황열병 확인증, 입국비자, $50. 시야가 어두어졌다. 가로등도 없고 마주오는 차의 불빛만 보인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바로 추월이다. 아프리카 전체는 우측 운전석이다. 10년전 에티오피아에서 운전한 기억이 난다. 나도 모르게 좌측 운전을 하고 있었다.  마주오는 차를 피할려고 급하게 우측으로 틀었는데 다행히 인도와 공간이 좀 있어서 사고는 피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는 도중 중간 중간 검문소가 있다.  버스 뒤 드렁크를 열어본다. 불법 물품을 있나 확인하는 모양이다. 군인 한명이 타더니만 남한, 북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응답이 묘하다.  South good, north bad. 동 아프리카 나라 중 케냐를 제외하고 모두 북한과 수교를 먼저 맺은 나라들이다. 남한과의 수교는 80년대 쯤 된다고 한다.   
드디어 탄자니아 호텔에 도착했다. 무려 27시간의 여정이었다. 참 멀다.   
   
호텔은 제법 크다. 캐롤송이 울려 퍼진다. 산타 모자를 쓴 웨이터가 우리를 반긴다. 저녁은 중국식이다. 시장한지 맛있게 먹었다. 내일 산행을 위한 짐 정리하고 샤워 후 바로 골아 떨어졌다.   

 

12.24 / 3일차

 

아침에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창밖이 캄캄하다. 6시에 해가 뜬다고 한다.
와이파이를 연결하여 메시지를 확인한다.
같은날 뉴질랜드 밀포드를 출발한 친구가 올린 여러장의 사진이 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년에는 여기도 필히 가보리라.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3년전부터 고산 트레킹을 시작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모두 미쳤다고 하지만 본인은 너무 좋단다.
맞다. 이런 트레킹을 올려면 3가지가 필수다.
체력, 시간, 돈. 아무리 하고 싶어도 60세 가까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일행들도 50중반부터 70대 까지다.
무엇을 하던 본인이 즐거운 일이나 취미를 하면 된다.
근데 생각만 가지고 거의 실천을 못하고 바라만 본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는 강력한 호기심이나 동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호기심이 강한 편이다. 처음보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혼자 많이 다닌다. 내 일정을 마음껏 조정할 수 있디 때문이다.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자꾸 바뀐다.
08:00 호텔을 출발했다. 아루샤에서 출발하여 마랑구 게이트 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물을 구입한후 11:30 에 마랑구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하늘이 솜털 구름이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가장 큰 바오밥 나무도 보인다.   
여기서 허가증을 받고 점심식사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밑에서 위로, 반동이 없이 그대로 함을 가하는 스트레칭.  바뀔 때 마다 호흡을 가듬고 약간 땀이 나고 근육이 아플정도 까지 해야 올바른 스트레칭이다.  
드디어 12:40 분경 등산을 시작했다. 오늘은 마랑구 게이트(1,970m)에서 만다라(2,720m) 까지. 8.2km. 약 4시간 정도 산행이다.  첫날인 만큼 천천히 가면서 적응하는 날이다.  폴레 폴레(pole)천천히. 천천히. 정말 천천히 간다.  맨 앞에 가방을 앞뒤로 맨 포터가 앞서고 모두 일렬로 따라가고 맨 뒤에는 산악대장이 따라온다.  
산이 완만하다. 800m 고도를 올라가지만 그렇게 심한 오르막이 없다. 조금씩 여유를 가져본다.  주변의 숲이 울창하다. 근데 모두 잡목이다. 우림지역이다. 오래된 나무는 여러개의 연리목이 엉켜 둘레가 참 크다.  그 주변은 작은 나무들이 뒤엉켜 길외는 들어갈 수가 없다. 길은 외길이다. 꼭 한라산을 올라가는 느낌이다.  잎들이 참 깨끗하다. 먼지도 일어나지 않는지 봄의 새싹들처럼 반짝거린다. 바람도 없다.  하지만 고산이라 휴식 때는 서늘함을 느낀다. 천천히 걸어도 땀이 난다.  머리에 두건을 썼지만 땀이 흘러 내려 콧등에 맺힌다.  다행히 안경에는 맺히지 않는다.  배낭에 장착한 물통에 호스를 연결하니 이동하면서 물 먹기가 참 편하다.  
드디어 만다라 산장. 17:00 에 도착했다.  다인실 2층 침대에 숙소를 정하고 준비한 커피를 마셨다.  참 맛있다. 열대지방의 커피는 숙성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깊은 맛이 난다.  19:00에 식당으로 갔다.  스웨덴인, 미국인등 40명가량이 가득 메운다.  모두 같은 코스로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국인 아가씨 2명도 보인다.  단체가 아닌 자유투어로 와서 현지에서 합류한 모양이다.  참 대단해 보인다.  모든 식품을 포터들이 들고 와서 산장에서 바로 쿠킹해준다.  밥과 국은 바로 한것이고 반찬도 다양하다. 수박과 생강차도 내준다.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환영행사도 해준다. 우리를 위해 무려 30명 가량 같이 움직인다. 이들 모두 환영 합창을 한다.  Welcome Kilomanzaro! Hakuna matata!!! 스왈힐리어로 부르는 노래가 흥겨워 모두 박수를 친다. 즐거운 저녁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21:00 취침.  

 

12.25 / 4일차

 

 

05:10 기상,  07:00 식사.  08:20 출발 (호롬보)  11.7 km. 고도차 1,000m 다. 약 7시간 소요될 예정이다.  오늘도 스트레칭으로 준비운동을 한다.  베낭에 따뜻한 물을 2l 나 채우니 역시 무겁다.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 다른 산행인들도 모두 준비를 한다.  약 40명이 호롬보가 목적지다. 길이 완만하다.  조금 지나니 우림지역을 벗어나 관목지대로 들어선다.  허리정도 높이의 잡목들이 듬성 듬성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다.  푸른하늘과 어우러져 하늘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중국 차마고도 시작점인 샹글릴라(내 마음의 해와 달)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간 중간 작은 폭포도 보인다. 깍아지른 절벽도 있다. 여기서만 피는 ‘세네시오 킬로만자로’ 나무도 있다.  나무둥지는 선인장 같은데 잎은 바나나처럼 나있다. 특이한 나무? 식물이다.   
11:30분에 점심을 먹었다. 맛이 있었다. 한기가 들어 바람막이 옷을 입었다.  12:20 분에 출발. 3,200m 를 넘어서니 날씨가 수시로 바뀐다. 햇빛이 나면 덥고 안개가 끼면 서산하다.  감기에 들지 않기 위해서 보온에 각별히 주의한다. 고산병에는 감기가 최악이다. 목적지가 다가오니 조금씩 힘이든다.  가파른 것은 아니지만 길이 참 길다. 15:30 경 드디어 호롬보에 도착했다.  산장이 참 크다.  화장실도 깨끗하다.  2층 침대 6인실에 5명이 배정되었다.   
3,720m 높다.  Ebc 남체 보다 높다.  남체에서 머리가 많이 아팠는데 똑같은 증상이 느껴진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옷을 보온내의로 갈아 입었다.  물도 많이 마셨다.  이것 저것 군것질도 했다.  속이 울렁거림을 이기기 위해 이야기에 참여도 했다.  사실 걱정이 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또다시 고산병으로 인해 정상을 못간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다행히 한 두시간 지나니까 좀 나아진다. 머리도 덜 아프다. 6시에 저녁식사를 했다.  닭도리탕이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일단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리라.   
저멀리 정상이 보인다. 참 멀리 느껴진다. 마지막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지 모르지만 일단 오늘까지 이상 없는 것에 만족하자.   
   
잠을 푹 자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안개 때문에 별은 안 보였다. 모두들 취침한 상태라 계속 불을 켜 놓기도 미안하여 9시에 취침했다.  다이아막스 영향인지 소변이 마려와 일어나니 10시 밖에 되지 않았다. 밖에 나가니 그렇게 춥지가 않다. 내일 산행은 큰 무리가 없을듯 했다.   

 

12.26 / 5일차
 

아침에 깨니 05:15. 밖에 나왔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이라 붉은 기운이 저멀리 일자로 뻗어 있다.  보이는 저 곳으로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산이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솟아 오르고 있으리라.  10분 정도 지나니 하얀빛이 두둥실 떠오른다. 순간 온천지가 밝아 온다. 하루의 시작이다.  모래 요후루 피크(5,895m) 에 오르는 도중에 멋진 일출을 본다고 한다. 기대된다.   
   
 07:30 식사를 마치고 08:30 에 모여 준비체조를 한다.  참 필요하다. 역시 안전이 제일이다.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 얼룩말 바위(4,050m) 까지 해발 330m.  4시간 산행. 10km 정도 왕복 산행이다.  내일 고도 1,000m 를 오르기 위한 고소 적응 시간이다.  올라갈 때는 햇빛이 나 따뜻했는데 이내 바로 안개가 끼면서 스산해 진다.  
 올라갈수록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은 날씨만이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변덕이 심해진다. 회사도 마찬가지.  오래된 회사일수록 변화가 빠르지 않으면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근데 이런 변화들의 기준이 있으면 미리 예측하여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절대 없고 수시로 온다.  나이가 들수록 더 욕심이 많고 많이 가질수록 더 가질려고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어야 하나???  아직 고 까지는 인생을 안 살아 봐서 사실 모르겠다.  나도 작년 4월에 갑자기 짤렸다. 정확히 32년 4개월만에,  경영 9년 4개월만에 밑으로 내려왔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까지 내 회사라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 했건만 주주와의 의견 불일치로 8월말에 종을 쳤다.  지금은 그 분께 사실 역설적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좀 더 빨리 이런 기회를 내게 주었더라면 하는 아쉼움이 남지만...  
이 세상 자체가 변화의 연속이다. 뚜렷한 목표도 없다.  단지 나, 내 조직, 내 나라만 잘 살기 위해 모든 행위를 하는 모습이다.  그 이후도 똑같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이 죽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이는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탄생되고 부터 계속해서 되풀이 되어 온 것이다.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간세상이 언제 망하는냐의 문제지 더 좋은 삶이 도래된다는 믿음은 엄청난 착각이다.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어쩔수 없는 변화를 받아 들여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연의 이치다. 이를 배워 삶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왔다.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힘들게 올라가는 이유를 물어 본다면 오로지 욕심으로 가득찬 인간세상을 헤쳐 나갈 능력이 없어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경우가 싫어서, 하루 온종일 일에 매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경우가 싫어서,  나는 아프리카의 제일 높은 산 킬로만자로 피크에 올라간다.   
   
 알파인 지대(사막지대) 세네시오 꽃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자주 보니 야자수 둥지에 바나나 열매를 무성하게 달고 있는 모습이다.  나무의 꽃도 보았다. 안개꽃처럼 풍성하게 나있다.  
 완만하다. 즐기면서 올라갔다. 미국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혼자 오셨는데 75세라고 한다.  정말 체력이 대단하다. 이번 일행중 70세 노인이 2분이나 계신다. 내가 저 나이 되면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바위산에 도착했다. 병풍처럼 큰 바위(50m*10m)가 우뚝 서 있다.  근데 바위의 색깔이 위에서 아래로 흑색 황색 붉은색 등이 어우러져 흘러 내린다.  아마 화산지대이다 보니 오랜세월동안 형성된 모습이리라.  
 바위산 옆에는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안개속에 보일듯 말듯하다.  ‘마웨인 mt’ 5,150m 바위로 둘러 싸여 정상정복하기가 힘든단다.  암벽등산 만이 가능하다. 탄자니아 인들에게는 마웨인, 킬로만자로mt 두 산을 신격화 한다. 마음 속의 정령이 숨어 있다고 한다.  
 말바위를 옆으로 돌아 가파르게 올라 갔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저멀리 키보산장 가는 좁은 길이 보인다.  하얀 산장도 가물거린다. 요후루 피크는 안개에 싸여 모습을 절대 보여 주지 않는다. 하산길은 자갈길이다.  가파르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힘이 든다. 내일은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 호롬보 가까이 오니 큰 길이 보인다.  다친 사람들을 만다라까지 운송하기 만든 차도라고 한다. 근데 free charge 라고 한다.  국립공원이라 정부차원에서 관리하므로 긴급우송은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있는 모양이다.  
   
12:30 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산악대장의 부탁. ‘절대 낮잠 자지 마세요’. 한 롯지에 5명이 숙박을 했다.  40년지기 친구분이 두분 계셔서 여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19:00에 저녁을 먹고 내일 산행에 대해 주의 사항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별이 참 총총하다.  마랑구에서 본 것 보다 더 선명하고 많다. 차마고도 메리설산 서 본 별이 생각난다.  밥뚜껑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별이 위, 좌우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꽉 차 있었다.  별의 박사님(. )말씀이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9천개가량 되는데 북반구에서 5천개, 남반구에서 4천개 돤다고 했다.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와 같은 계가 수억개나 된다고 하는데,  이 점 같은 지구에 존재하는 한갖 미물이 뭐 그렇게 잘 났다고 뻐기고 있는지 참 불쌍한 먼지 티끌이다.   
내일을 위해서 9시에 잠들었다.   

 

12.27 / 6일차

 

 

05:15 기상 식사후 07:00 에 출발했다.  드디어 마지막 산장인 키보로 향했다. 하늘이 매우 맑다.  선택 받은 것 같다.   그야말로 풀하나 없는 넓은 들판에 자갈들 뿐이다. 저 멀리 밑으로는 하얀 구름이 자욱하다.  그 밑에는 매우 서산하겠지. 구름위의 산을 걷는 기분은 천상의 세계에 있는 느낌이다.  넓은 들판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경치다. 맞다. 산티아고의 푸른 들판과 닮았다.  능선의 선이며 구릉과 굴곡들이 묘한 곡선을 이루며 조화로움을 이끌어 낸다.   저 푸른 하늘은 어떤 색조일까?  아무리 아름다운 색들을 섞는다 하더라도 이런 색깔을 못 낼 것이다.  호수의 빛은 호수밑의 자갈이 빛을 받아 푸른색만 반사시켜 그 빛을 낸다고 했다.  해서 햇빛의 량에 따라 그 색깔들이 자주 바뀌어 더욱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럼 하늘의 빛은? 공기중의 먼지 알갱이의 반사인가??  
 마웨인이 바로 코앞이다. 둘레가 굉장히 크다.  하늘이 청명하여 뚜렷이 전체가 보인다.  산위에 거쳐 있는 구름이 꼭 봉우리에서 연기를 내뿜는것 같다.  11:30 큰바위 무덤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천천히 걷는다.  Pole pole (천천히 천천히)  아마 옆에서 보면 답답할 정도 일 것이다.  여기 현지인들이 항상 외치는 말이 pole, pole 다.  아마 산을 오르는 것 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도 같으리라.  사실 바쁜게 없다.  모두가 천천히 함께 가는데 혼자 빨리 가면 누가 바보일까?  아프리카 속담에 “멀리 갈려면 같이 가고 빨리 갈려면 혼자 가라” 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근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선진국에서는 늦어면 아예 낙오자가 된다.  빨리 졸업해서 빨리 돈벌어 빨리 성공한후... 빨리 죽으면 되는데.. 이게 문제다.  더 오래 산다. 그것도 있는것 가지고 조용히 살면 되는데 더 오래 살려고 더 많이 가질려고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있다.  아예 합법적인 권리를 등에 업고,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명예욕과 뱃돼지만 문지르고 있다.  참 추해 보인다. 아마 본인만 모를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이를 이용하여 기생충처럼 짤싹 들러 붙어 갖은 아교를 부리면서 더욱 더 알량한 권력을 남용하여 힘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모두 돈벌이에 미쳐 날뛰는 비 양심적인 기업가들이 저질러 놓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드디어 키보산장에 도착했다.  15:00. 천천히 와도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이 빠르다.  햇살이 좋아 그렇게 춥지 않다. 해가 지면 영하 10도로 뚝 떨어진단다.  온무장을 했다.  히트 내의는 기본, 양말도 2걸레, 장갑도 내피까지, 두꺼운 머프도 챙겼다.  23:00 까지 취침이다. 5시간 정도 잘수 있겠다. 잠이 오든 안오든 일단 쉬어야 한다.  

 

12.28 / 7일차

 

23:00 대장이 깨운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스프를 한그릇 먹고 밖으로 바로 모였다.  칠흙같이 어둡다. 그렇게 무장을 해도 추위를 느낀다.  23:40 일렬로 출발.  모두 헤드랜턴에만 의지하여 앞사람 뒤만 보고 올라간다.   
Pole Pole....  온천지가 자갈밭이다.  7명의 포터들이 노래를 한다.  한명이 선창을 하면 모두 후렴을 한다.  아프리카 특유의 가성도 낸다. 아마 우리의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모양이다.   
잠깐 쉬는 동안 하늘을 본다. 주위의 불빛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5,000m의 고도에서의 밤하늘은 손만 뻗으면 바로 잡힐듯 하다.  호롬보에서는 안 보이던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자태를 뽐낸다. 오리온 자리, 큰곰자리, 삼태성 등. 잠시지만 피로를 뒤로한다.  정말 힘든다. 좁은 자갈밭 길, 경사가 30도는 되어 보인다. 이런 깔딱고개는 처음이다. 키보산장에서 빤히 보이던 것이 이렇게 길줄이야.  한스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벌써 2명이 탈락되었다. 계속 물을 마셨다. 포터 자신들도 힘들텐데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래하고 부축해 준다.  서서히 동이 튼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붉은 기운이 차고 올라온다. 드디어 길만스 피크(5,695m) 능선 꼭대기에 올라섰다. 06:00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완전히 기진맥진이다. 정상까지는 또 2시간이나 더 가야한다. 왼쪽으로는 올라왔던 자갈밭. 오른쪽으로는 넓은 구렁지다. 저 밑으로 눈이 보인다.  옛날에는 이 구렁지가 모두 눈으로 덮혔다고 한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아싸바스카’(깊이가 2km 의 눈의 시원)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오로지 요후루 피크까지 가야한다. 마실 물도 없다. 목도 타고 한발 한발이 천근만근이다. 2.4km. 고도 200m. 다행히 춥지는 않다.  그래도 고지대라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한기가 든다. 올라올 때의 보폭이 30cm 라면 지금은 15cm 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아픈다리를 질질 끌면서 가면 걸음걸이다.  접히는 허리를 겨우 스틱으로 지탱한다. 그래도 가자. 지금까지 40km를 걷고 해발 4,000m를 올라온 이유가 바로 저곳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불과 1km 남았다.  마지막 고지를 향해 기어서라도 가야한다. 한발 한발. Pole pole.   
  드디어 정상!! 요후루 피크(5,895m)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로만 자로(하얀산, 빛나는 산)에 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지금까지 세계인구 70억 중 39만 인구만 다녀간 곳. 해냈다.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실패했던 EBC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의 좌절감을 일시에 날려 버렸다.  내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08:00)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밑에 높이 30m 정도의 눈이 절벽을 이룬다.  녹아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혀 있다면 엄청난 절경이었을 것이다. 
  이제 하산이다.  너무 추워 정상에 오래 있지를 못한다.  맞다. 높은 곳일수록 머무는 시간이 짧다.  자연은 이것을 내게 가르쳐 준다. 오래 있을려면 주위에 방패막을 쳐야 한다.  즉 힘없는 사람들의 것을 갈취해야 한다. 바보다.  내려오면 되는데, 버리면 되는데, 그럼 또다른 정상을 갈 수도 있는데..  힘들게 올라 왔다고 그 자리에 머무는 순간 얼어 죽는다.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이제 의지도 없다. 하지만 내려가야 한다. 아무도 나를 부축하지 않는다.  다리야! 제발 마지막까지 버텨다오. 목도 타고, 허기 지고, 잠도 쏟아진다. 잠깐 쉬는 동안 저절로 눈이 감긴다.  포터들이 빨리 하산하라고 부추긴다. 그래야만 두통이 가라 앉는다고. 여기서 졸면 바로 동사한다고.  그래 가자. 단 5분도 못 쉬게 하는 너희들이 밉지만 내려가야만 내가 산다고 하니 당연히 가야지.   
길만스 피크에 도착했다. 09:30. 2.4km 고도 200m 를 왕복하는데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아마 이 경로는 절대 못잊을 것이다.  당연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어둠을 뚫고 비몽사몽간에 올라온 자갈밭이 환하게 보인다. 지그재그 길은 있지만 바로 내리 꽂는다.  아예 미끄럼을 탄다고 해야겠다. 다시 다리에 힘을 준다. 푸린 다리가 자꾸만 미끌어져 넘어진다.  먼지도 날리고, 햇빛은 따갑고 길도 만들어 가고 이거야 말로 파죽지세다. 만약 이 언덕이 모두 눈으로 덮혔다면 천해의 스키장이 되었으리라.   
저 멀리 키보산장이 보인다.  바로 코앞인데 가도 가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정상 까지는 좋았는데 이 하산길은 정말 미친짓이다. 멀지만 충분히 우회길을 낼수도 있었을텐데....   
기다시피 하고 초죽음이 되어 키보산장에 도착했다. 12:30. 하산길이 3시간 걸렸다.  어제밤 23:30 출발했으니 무려 13시간만에 돌아온 것이다.  에너지가 완전히 소모되었다. 콩나물 국밥을 먹는둥 마는둥. 바로 엎어졌다.   
하지만 대장이 바로 호출이다. 호롬보로 내려가야 한다. 왜? 여기 계속 있으면 고산증이 해소가 되지 않으니까. 꾸역 꾸역 또 베낭을 챙긴다.   
13:30 출발. 10km. 차마 발걸음 떨어지지 않지만 또 가야 한다. 그래도 하산길이라 좀 낫다. 넓은 평원이 나를 맞이 한다.  하늘이 참 맑다. 날씨가 복을 준다. 바로 앞 마웨인이 전체를 보여준다. 정상을 정복한 축하의 메시지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국의 젊은 남녀들도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곳을 올 생각을 했을까? 또다른 60대의 청춘? 두 분도 만났다.  아프리카 전역을 20일 동안 여행 중이란다. 참 대단하다. 하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하고 있는 모습에 존경심을 느낀다.   
내려 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멀다. 꼬박 뜬 눈으로 그 힘든 산을 오르고 또 하루 종일 걷고 있으니 눈이 저절로 감긴다.  또 포터들이 독촉을 한다. 천천히 걸으도 좋으니 움직이라고.. 산에 대해서는 모구 베테랑이니까 당연히 말을 들어야지. 털레 털레.. 한발 두발...   
드디어 호롬보 도착. 17:30 무려 18시간을 걸었다. 바로 침낭속으로 직행.   
19:30저녁 먹고 21:00 취침.   

 

12.29 / 8일차

 

05:30 에 일어났다. 푹 잤다. 개운하다. 새벽의 공기가 시원하다. 산에서의 마지막 식사.  떡국이다. 새해가 다가온다고 준비한 모양이다. 맛있게 먹었다. 저 아래 붉은 기운이 쭉 뻗어있다. 멀리 마웨인, 킬로만자로 모두 선명하게 보인다.  우뚝 쏫은 모습 뒤에 내 발자욱을 남겼다는 생각에 벌써 간사한 마음이 든다. 07:00 에 하산 출발이다.  20km 이틀동안 내려 온 길을 한번에 내려간다.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가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넓은 평원의 사막지대를 지나 관목지대로 들어선다.  여기서만 볼수 있는 아바레스크 (줄기가 에델바이스처럼 생겼고 꽃은 작은 들국화를 닮았다.)가 지천이다. 레드 파이어(red fire)도 화사하게 피어있다.   
 우림지대로 들어서니 울창한 숲이 나온다. 그늘이 져 시원하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알면 절대 가고싶지 않은 곳이리라. 포터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 내린다. 하루에 $10 일당이다.  하지만 신발은 모두 등산화다. 네팔 ebc 포터들은 조리신발로 다니는데...  문명세계를 접해 보았다면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달을 것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생활에 차이가 날까?  
 여기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Ngo 단체인 samsal(한끼의 식사기금) 활동을 하면서 참 많이도 다녔다.  가장 최악의 상태는 다카(방글라데시 수도)외곽지대에 사는 사람들 같다.  낮은 지대라 도시 주변의 흙을 파서 위로 올려 만든 다운타운은 엄청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흙을 퍼낸 곳은 항상 홍수의 위험이 있어 대나무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밑으로 폐오수를 버리고 그 물로 생활하고 홍수가 나면 뭍으로 올라와 구걸을 한다.  
 인간의 삶은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이후로 절대 이루어 지지 않았다.  향후 더욱 더 벌어질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사나운 사자와 약삭빠른 여우의 모습을 가진 군주만이 살아 남는다고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진자, 권력자들은 항상 호시탐탐 먹이감을 노리고 힘없는 자를 이용을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인간은 사악한 존재다. ‘유발하라리’(호모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저자)가 왜 이런 것은 주장 안 했는지 궁금하다.  결국에는 세상은 망한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던지,  환경으로 파괴되던지,  핵무기로 한순간에 없어지던지,  바이러스(휴대폰등)로 고통 받다가 죽던지,  아니면 쇠덩어리 로봇에 의해 지배 당하던지 궁극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다.  
 자! 그럼 현재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  이는 초등학교 교육만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다.  단지 그 놈의 “욕심” 때문에 모른척 할 뿐이다.  
마랑구 게이트 입구에 도착하니 14:00 7시간 걸렸다. 6일만의 대 등정이 끝났다.  이제는 걷지 않아도 된다. 정말 두 다리가 수고가 많았다.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출발할 때와 지금의 마음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은 단순히 “아! 성공했다” 라는 마음 뿐이다.  인간의 환경의 동물이라 빨리 문명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도시락을 먹고 포터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에 탑승. 16:30에 모시호텔에 도착했다.  6일 동안의 묶은 먼지를 말끔히 씻어 냈다. 시원했다. 맥주를 들이킨다. “그래 이 맛이야” 역시 혀는 간사하다.  한번 맛본 것은 절대 잊지 못한다. 지금 당장 그리운것. 삼겹살에 소주 한잔. 카~~.  된장국, 돼지고기를 듬뿍 설아 넣은 김치찌게에 하얀 쌀밥을 쑥쑥 비벼 한숫갈 가득 입안으로 쑥. 우~~   
저녁전에 시작된 맥주 파티가 식사중. 식사후 까지 이어져 밤 1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2.30 / 9일차
 

 07:00 기상. 문명의 잠자리가 참 편했다.  푹 잤다. 식사후 09:00 출발.  버스를 타고 11:00 에 탄자니아 출국, 케냐 입국 수속을 밟았다.  케냐 공무원이 좀 까다로왔지만 모두 무사히 통과.  버스를 갈아 타고 마사이 빌리지에 12:30 에 도착했다.  
 한 빌리지에 15명 정도 거주한다.  이런 빌리지가 이 근처 10순데 정도 있다고 한다.  추장이 나와 인사를 하고 환영 춤을 춘다. 일렬로 서서 노래하고 제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는 것이다. 하나 같이 모두 야위었다. 영양분이 몹시 부족한 상태다.  오래 전에는 마사이 족 하면 전투적이고 용감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놀리감으로 전락되었다. 집을 보여준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고 흙과 소똥으로 집을 지었다.  내부는 너무 어두워 사물 분간이 안되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노부부와 간신히 눈인사를 한다.  사실 이런 집들은 많이 보았다. 이들에게는 최상의 집들이다. 절대 여기서 벗어 날 수가 없을 것이다.  추장 아내(10명)가 만들어 파는 난장 가게로 이끈다. 강요에 못이겨 목걸이를 구입했다.  자꾸만 다른 것도 구걸한다. 또 하나 샀다. 사실 땡볕에 앉아 있는 여인들이 너무나 애초롭게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한계인 것을...  
 Samsal 이 해야할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13:30 에 Ol Tugai 호텔에 도착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내 정말 오아시스 같은 호텔이다.  주변은 모두 활량한 벌판 지대인데.  여기만큼은 큰 야자수, 수영장, 쭉 이어진 숙소등 천국이다.  
식사후 16:00 에 사파리 투어를 했다.  사파리 중 가장 넓은 곳이 세링케티(탄자니아)이고 그 다음이 이곳 암보셀리(케냐)다.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곳은 이곳으로 이유는 킬로만자로가 바로 눈앞에 보이고 이 숙소주위로 전체가 동물들 서식지인 때문이다.  불과 2시간 만에 모든 동물들을 볼수 있단다. 코끼리, 타조, 기린, 얼룩말, 누, 사자, 야생 조류들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다.  사자는 25마리 정도 있고 수명은 15년. 코끼리는 500마리 정도 있고 수명은 60~70년 산다고 한다.  건기 때 이지만 중간 중간 호수가 있어 동물들 서식지로는 최상이라고 한다.   
식사 전 맥주를 한잔하고 모닥불 가에 앉았다. 불꽃이 제법 거세다.  앞쪽으로 석양이 비친다. 불빛이 같이 어우러진다. 갑자기 ‘out of Africa’ 가 떠오른다.  자유의 남자 레드포드와 지주인 메릴 스트립 주연이다.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초원으로 두사람이 헌팅을 나서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모닥불을 마주하고 서로의 인생을 얘기하는 장면이 딱 이 모습이다.  정말 아름답다. 누가 아프리카를 항상 더운 지역이라고 했던가?   
실지 아프리카는 살기 힘든 곳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통 해발 1,000m 이상이라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건기에는 습기가 없어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다.  모든 곳이 사막지대가 아니고 모든 곳이 사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활하는데 기후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유럽인들은 겨울에 추운 곳을 피해 여기가 최상의 후양지다. 다행히 모두 영어를 기본으로 한다.   
19:30 식사후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다 22:00에 잤다.   

 

12.31 / 10일차

 

 

05:00 에 일어났다. 잠자리가 최상이다. 푹신한 침대에 적당한 기온. 높은 천장.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밖에서 간간히 동물 울음소리도 들린다.  아직 캄캄 하지만 새벽 공기가 매우 신선하다. 깊은 호흡에 단전의 울림을 느낀다.  06:00 새벽 사파리를 나섰다. 셔츠 홉겹이라 써늘하다. 차가 달리니 바람이 차다. 으스스. 잠바라도 입고 올걸..  
 저멀리 붉은 기운이 일자로 뻗는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온다. 동물들의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킬로만자로를 배경으로 코끼리 가족 한 무리가 줄지어 식사를 한다. 정말 한폭의 그림이다.  TV 나 영화에서만 보는 장면을 현재 내가 실지로 보고 있다. 얼마나 한가로운가? 보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속에 갇힌 동물들이다.  여기서는 사냥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1960년대 부터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당연히 후세의 자산을 있는 그대로 물려줘야지.  
 08:00 식사후 하나의 연출을 했다.  숙소 앞에 탁자와 의자, 커피 한잔,  그리고 책을 읽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모습, 나이가 많이 들어 꼭 하고 싶은 것을  지금 미리 잠시나마 느껴 본 것이다. 내가 봐도 멋있게 보인다. 액자를 해서 걸어 놓고 싶다.  
09:00 그 멋진 호텔을 뒤로 하고 케냐 나이로비로 향했다.  비 포장도로를 80km 달리고 다시 160km 를 달린다. 주변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다.  지평선이 보인다. 향후 3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사뭇 궁금하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룸메잇이 시원한 맥주를 사준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갈증을 해소 시킨다. 드디어 케냐 다운타운 들어섰다. 제법 정리되어 있고 큰 빌딩도 보인다.  일요일이라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다. 하긴 케냐는 아프리카 부국이다. 모든 외국 공관들, 유엔산하 환경본부도 여기 나이로비에 있다.   
14:00 후루샤또(고향) 식당에 도착했다. 도시락과 미소국이 맛있었다. 소주($11)도 시켰다. 커피($13)도 구입했다.  근처 기념품 가게를 들러 말조각품($10)도 샀다. 가격이 기준이 없다. 이를 손님들이 악용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가격이 고무줄이라지만 터무니 없이 깍는 것은 파는 사람에 대한 모독인것 같다.   
마치고 쇼핑센타를 둘러 사파리 호텔로 왔다.(17:00). 나리로비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다. 엄청나게 넓다. 리조트 형식의 룸이 200실은 되는것 같다. 19:30 저녁식사는 각종 고기 바베큐를 맛볼수 있었다. 식사 후 쇼도 한다.   
흑인 고유 전통의 무용인데 볼만했다. 년말이라 불꽃도 터뜨린다. 한국만큼 다양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새해를 맞이하는 데는 충분했다.   
01:00 잠들다.   

 

01.01 / 11일차

 

07:00 에 일어났다. 새해다. 재야의 종소리도 들었고 불꽃쇼도 보았다. 아침 식사후 넓은 정원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을 정리해 본다.    
출발할 때의 다짐 ‘정상정복’ ‘욕심 내려 놓기’ ‘18년 사업 안정화’ 을 다시 되새겨 본다.    
아프리카 최고봉은 정복했다. 자연이 나를 받아 준 것이다. 산악 대장(최민식)과 현지 캡틴(살바노), 포터들의 도움이 있었고 특히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최민식 대장은 산에 대해 완전한 베테랑이다.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항상 주문한 말 "물을 많이 마시세요" "몸을 따뜻하게 하세요" "천천히 걸으세요" 등이 아직도 세뇌되어 있다. 욕심은 Pole Pole 를 통해 조금은 내려 놓았다. 현재 주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능력 밖의 일을 추진하지 않으며 되도록이면 멀리 보고 가는것.  즉 2020년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 하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 나의 능력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분명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사기다.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하지만 상대방을 속이면서 까지는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 이는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서로의 임무를 명확히 한 다음 정확한 미래 보장이 되어야만 최선을 다할수 있다.    
‘음주, 골프 자제하기’ 이것이 참 어렵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업에 매진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경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분명히 줄여야 한다.    
-. 일주일주 : 일주일에 한번만 술 먹기    
-. 이주일타 : 2주에 한번만 공치기.    
‘독서에 매진하기’ 이는 얼마든지 할수 있다. 문제는 매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구난방의 독서가 아닌 테마를 정한 후 하고 싶다. 우선 ‘인간의 마음, 본성’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    
    
이번 여행의 결과는 무엇인가?    
진정 내가 한 말과 행동들은 몇 % 나 일치할까? 나의 전두엽이 시키는 데로 했는가? 아님 나의 깊숙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했는가?    
내가 말을 하고 행동을 보인 것이 얼마나 진실일까? 나도 모른다. 현재 이글을 적고 있지만 이 글의 주체를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끌적이고 있다는 것은 그 무엇이 명령을 내리니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    
    
나의 주체를 모르는 것이다. 내 자신의 주인이 무엇인가?? 순간 순간 바뀌는 말과 행동들의 근원이 하나일 수가 없다. 여러개다. 그럼 그 기준은??? 무슨 근거로 떠들고 행동하는가??    
육체? 졸리면 자야한다. 그럼 자라고 명령을 내 머리에서 내릴 것이다. 그럼 억지로 졸린 눈을 비비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이는 무엇이 명령을 내리는가??    
머리 따로. 말 따로. 마음 따로.    
모두 따로 국밥이다.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하나??    
지금 배가 고프다. 이는 지극히 육체적인 반응이다. 지금 배고픈 것을 머리를 통해서 전달 받은 것이 아니고 바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 아닐까? 즉 머리를 통하기 전에 육체를 통해서 바로 느끼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그럼 이성은 왜 필요한가?? 배고프지만 조금만 참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일께다. 아니 당장 참지 말고 라면이라도 먹으라고 얘기 하는게 머리다. 그럼 똑같은 머리인데. 왜 다른 진단을 할까?     
이는 신방성이 없다. 즉 머리는 믿을 존재가 아닌 것이다. 절대 머리의 명령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성을 좌우하는 머리는 어떻게 받아 들일까?? 이 이성의 명령 또한 믿을 수 있을까??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되는데로 살아라고??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머리도 말도 마음도 모두 내 것인데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 즉 되는데로 맡긴다면 아무 기준도 없고 이리 저리 떠도는 씨앗에 불과 할 것이다.    
    
무엇을 우선 순위로 둘까?? 당연히 마음이다.    
진정 저 가슴 속 깊이 차 있는 그 무엇이 시키는 데로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이 결과는 절대 존재감이 될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방향데로 키를 잡을 수 있으니 그 목적지는 분명하리라.     
그래서 나는 또 다른 고봉을 올라 자연에게 마음의 진정한 주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다.    
    
이제 여행이 끝이 난다. 얼마나 성숙 되었느지는 모르지만 분명 내마음 속 한자리에는 씨알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이를 얼마나 잘 가꾸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정해지리라. 호모 사피엔스 “김희균” 네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