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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없는 설산 - 안나푸르나트레킹 후기(2)
작성자 김*성
작성일 2013.01.03




트레킹 시작점인 ‘나야풀’에서 셀파, 포터 등 요원들과
출발 전 미팅을 한후 드디어 장정에 오른다.


안나푸르나 자연보호지역에 접근하는 최단거리 지점인 그곳 나야풀은
셀파와 포터를 많이 배출하고있는 중소규모의 마을이다.






비포장 거리는 온통 울퉁불퉁한체
좌우로는 영세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어
외지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이채롭고
간혹 화려한 문양과 색칠을 한
네팔리버스도 흙먼지를 잔뜩 날리며 삐걱이며 지나간다.





곧, 계곡길로 접어들어
와이어로프로 만든 출렁다리를 지나 본격적인 트레킹 루트이다.





손목에 찬 다용도 고도계는 해발 1,050미터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간혹 길가에 무성한 바나나 나무에는 열매가 달려있다.






돌담 옆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고있는데
저 멀리에는 네팔어로 ‘생선꼬리’라는 뜻의 ‘마차퓨차레’봉이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련하다.



동행인 듯 길가를 따라 흐르고 있는 ‘모디콜라’ 강물은
석회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물색깔이 온통 뿌우옇다.
한참을 걸어 우르르쾅쾅 흐르는 강물위로
콘크리트로 새로 만든 다리를 건너
‘입산허가소’에서 단체로 신고를 마친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자연보호구역’과 ‘神聖구역’으로 설정되어있어
입산허가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모디콜라강 지류를 따르는 길로 접어들어가니
경사가 급한 다랭이 논밭이 즐비한 곳에는
高山族의 農家도 점점이 박혀있고
골짜기옆 논에는 한가로이 풀을 듣는 조랑말도 있다.





고도는 점점 높아가지만
근래에 개설한 좁은 도로가 한동안 연속되어
아직은 트레킹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길가에는 아열대 식물군이 빼곡하고
이름은 아지못할 독가시나무도 즐비하다.
우리네 대나무와는 달리 포기형태로 자라는 아열대성 대나무는
11월인데도 죽순이 뻗어 여물어가고
그 크기도 우람하다.





지붕밑에 매달은 통나무로 만든 자연산 벌통도
보기에 특이하다.



비교적 산간 하부지역에 위치한 ‘비레탄티‘ 마을에서
간식과 차 한잔을 마시고
다시 더 오르니 수천년을 이어오는 마을간의 통행로-등산로가 시작된다.
아열대 식생은 산길 좌우에 울창하고
간혹 좁은 산길의 운반수단인 ‘남록’을 머리에 맨 네팔리들을 만난다.
우리는 밝은 얼굴로 나마스떼!!를 연발한다.
나마스떼,
이 한마디면 여러가지 의미의 인사말로 통용되는 곳이다.

‘길이 있어 그 길을 걷는다’는
깊은 듯 낮은 듯한 철학적 의미도 생각하며
결코 적지않은 나이줄에 들어선 나는
히말라야 지맥인 안나푸르나 山群을 찾아 걸어오른다.
앞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숲길에
고도를 오르는 데 따른 가쁜 숨소리만 끝없이 울린다.





갑자기 은은한 워낭소리와 함께
아이의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 길옆에 서서 찾아보니
저 산고개를 넘어 경사진 산허리를
한 떼의 양들을 몰고오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평지가 거의 없는 이런 山麓 마을에서도
저런 양을 치는 일이 가능한지...
회초리를 들어 양떼를 채근하는 기이한 목소리를 내다가
바위턱에 앉아 다리쉼을 하는 목동의 남루한 모습에서
멀리 달아난 옛날을 더듬는다.





검은 들소 두마리를 한 데 메어 논갈이를 하는 다랭이논 농부도 본다.

경사가 급한 히말라야 산록에서 수대를 이어서 만들어낸
저 좁다란 평면에서 인류의 다양성과 한계를 본다.




이윽고,
트레킹 첫날- 오후에 시작하여 5시간이 지난 후에
오늘 묵어갈 see you라는 롯지가 있는 ‘힐레‘에 도착한다.
셀파가 준비하여 주는 따끈한 ‘짜이‘(히말라야지역 녹차에 우유를 가미한 茶)
한잔에 입안이 그윽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 하다.

숙소를 배정받고 식당공간에 모인다.
한국을 떠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 트레커들에게는 더 할수 없이 반가운 돼지고기수육에
히말라야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나서 중정에 모여 앉으니
하늘은 맑고 별빛은 초롱하다.

은하계의 온별이 총총히 나와서 우리를 반기는 듯 하다.
소싯적 시골하늘에 떠있던 은하수는
그 곳에도 처연하고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고
‘독견거직‘(독수리좌에 견우성, 거문고좌에 직녀성)하며
星座를 외우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문학소녀적 감성을 주체치 못하여
다랭이논에 거둬 쌓아놓은 벼낫가리에 누워
밤이 이슥하도록 별바라기를 했다는
동행자들의 얘기를 들은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