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티벳 여행기(첫 티벳 여행 전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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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권*혁 |
작성일 | 2009.05.15 |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언제든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늘 일탈을 꿈꿉니다. 인생이 늘 바람같기를, 언제 어떤 모습으로 떠나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티벳 여행기(2003. 8. 2 - 8. 9) 1. 티벳, 그 막연한 끌림 그리고 시작 (8/2) 한 학기를 보내고 심신이 지쳤을 때마다 티벳은 날 유혹하고 흔들며 며칠은 마음의 주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것이다 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위로와 일상의 탈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줄 것 같은 나라, 티벳! 알고 있는 지식이란 달라이라마와 중국 자치구 그리고 지천에 널린 구걸하는 사람들....... 혜초 여행사의 홈페이지를 놀이터로 삼으며 난 벌써 1년 전에 티벳 그 고원의 하늘 아래 서 있었다. 간절한 것 한 가지를 늘 마음에 품고 기억한다면 그 꿈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는 낙천가의 말을 믿는다. 겨울의 끝자락에 지중해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터라 그 누구에게도 이번 여행은 달갑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요구가 될 것이 뻔했지만 이 바람기를 잠재울 순 없다. 간절한 것은 이루어지기에. 떠남은 늘 설렘만 안겨 주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나 휴양지로의 유유한 떠남이 아닌 바에야 여행은 곧 고행일 터, 단순한 이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는 떠나지 못해 안달이다. 어떻게 아이들만 두고 떠날 수 있느냐에 의문을 가진 옛 성실한 동료들의 질문과 늘 내 편인 언니 형부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상경, 펼쳐 놓았던 짐들을 구겨 넣으니 이제 출발인가 보다. 비행을 앞 둔 유서는 이번 여행에선 예외다. 마음이 공기처럼 투명하다. 어떤 근심도 갈망도 없는 무색무취의 마음. 이제 내게 다가오는 것을 그저 보고, 느끼고, 기억하며,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중년의 여자 몇, 중학생 아들을 동반한 부부, 산악인 복장의 건장한 남자 둘, 40대의 조용한 부부, 20대의 가이드.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설렘이며 기쁨이다. 4시간여 만에 도착한 성도, 제복을 입은 공안들이 왠지 분위기를 압도하고 길림성에서 왔다는 현지 가이드 조선족 아가씨 이명자씨는 서툰 한국말에 극존칭을 써가며 성도 자랑이 한창이다. 다섯 번째로 큰 도시,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아 이모작도 가능해 살기 좋고, 가을 겨울은 습도가 많아 얇은 옷도 일주일 이상 걸려야 건조가 되며, 사천요리의 명성은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남자들이 가사 일까지 해 여자들을 위한 도시..... 딱딱하고 어눌한 발음이 익숙해질 무렵, 호기심 어린 도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회색빛 건물만을 가지런히 도열시킨 채 여린 숨을 쉬고 있다. 한 시간 만에 목적지인 천호 호텔에 도착,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에 이뇨제를 한 알 털어 넣고 잠자리에 들다. 내일은 티벳을 만나러 간다. 2. 신의 땅, 산양의 땅, 천년의 고도, 라사 (8/3) 케케한 곰팡이 냄새에 몇 번 잠을 깨고 피로가 몰려드는 비몽사몽간의 새벽 5시, 어제 밤에 만났던 거대한 도시를 움트는 미명 아래 조우하다. 두 시간을 날아 온 티벳의 수도, 라사 신이 미치지 않고는 저토록 파란 하늘과 저토록 하얀 구름을 창조하진 못 했을 것이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갈색 눈동자가 어느새 파란색으로 변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경외심을 갖게 하는 코발트 빛 하늘, 원시의 광분한 구름, 끝없이 펼쳐지는 협곡과 민둥산, 거친 산을 휘감고 도는 구름의 잔영 모두가 자연이란 이름으로 조화롭고 아름답다. 서로에게 그림자가 되어 상대를 그늘 속에 쉬게 해 주고, 오후엔 자신도 배려해 주는 그 그늘 속에서 길게 몸을 뻗고 게으름을 피우는 민둥산! 어떤 생명도 피워내지 못한다 해도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있으니 그 자체로 숭고하다. 이것이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이것으로 충분하다. 시골의 간이역보다 못한 황량한 라사 공항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부서진 화장실 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볼 일을 잘도 본다. 이런 난감함은 더 이상 만나지 않길..... 둥글 넙적한 갤러리 정의 얼굴에 까맣고 땅딸한 전형적인 티벳인의 현지 가이드는 환영의 뜻으로 하얀 스카프 카다(Good Luck)를 걸어 준다. 40분이면 도착한다는 시내는 한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고, 황토 빛 거대한 강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척박한 산, 손가락길이 만큼의 연록색 풀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는 야크와 산양의 무리 그리고 태양을 닮은 건장한 목동들만이 지루함을 잊게 한다. 황무지와 같은 저 암갈색 산 어디서 브래드 피트가 초췌한 모습으로 라사에 입성하지 못하고 배고픔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방황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가 넘어지면서 일으킨 뽀얀 모래 바람이 그의 변화된 양심만큼 하얗게 인다. 머리가 지끈지끈! 고산병이 시작되나 보다. 이틀 전부터 약을 먹어 온 착실파는 무사한 듯 하고, 오늘 하루는 적응을 위해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걷고, 물을 많이 마시라 권하며 3대 사원의 하나인 죠캉 사원만 구경하기로 한다. 흰 죽 한 사발이 아침 기내식이었으니 허기가 지고, 점심은 야크 스테이크와 볶음밥, 커리를 주문하다. 중국과 네팔, 인도의 맛이 섞였다는 음식들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사원 앞에 도착하니 오체투지(머리, 두 팔, 두 다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함)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리도 간절히 무엇을 비는 것일까? 무언가를 구하는 이들은 행복한 거다. 구하는 그 순간(그 소원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완성된 고결한 행동인 것이다. 가까운 이들을 잃고 내 생애의 행복의 요소가 80%쯤 사라졌다고 절망할 즈음, 새벽에 오른 관음사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 나는 아무 것도 빌 것이 없음에 또 한 번 절망하며 꺼억꺼억 울던 기억이 새롭다. 구하는 것이 없다 간절한 그 무언가가 없다 는 것은 삶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가 아닐까? 견디다 못해 선택한 새벽 기도는 또 다른 절망의 확인만을 안겨준 채 내 등을 떠밀었다. 감지 않아 고약한 냄새가 나고 다 헤진 겹옷을 입고, 햇볕에 그을린 노화된 피부와 삶이 고단함이 얹어준 나이를 배로 먹은 듯 보이지만 저들은 행복한 거다. 간절한 그 무어가가 있기에. 그것이 허황된 꿈이나 사소한 일상의 빌지 않아도 이루어질 일이거나 이기심과 질투로 가득 찬 소원이라 해도 그것은 살고 싶다는,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삶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멍한 눈으로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무모하다 말하는, 종교가 무섭다 라고 말하는 일행의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2,000km를 몇 년 몇 달을 거쳐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철판과 천으로 중무장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로 향하는 이들을 누가 무모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원내엔 어떤 의식이 진행 중이라 야크 버터 냄새와 사람들로 가득하다. 앞마당을 가득 메운 수도승들의 경전 암송 속에 고승이 끊임없이 야크유와 곡식을 재속에 뿌리며 축원한다. 죠캉 사원은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토번 왕국이 라사로 천도한 후 재앙이 끊이지 않자 당의 문성공주(한 때는 부국강병책을 펴 중국 공주를 뺏어 올만큼 강했음)가 연못을 메우자고 제안해 산양의 도움을 받아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사원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라사(산양의 땅)란 지명이 여기서 유래하며 사원 지붕 양식에서 두 마리의 산양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갖 전통 일용품과 수공예품 등의 상점과 노점상들로 가득한 바코르 시장을 기웃거리며 옛 5일 장의 넉넉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자니 어느새 먹장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린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비는 고향의 친구만큼 정겹다. 몇 걸음 걸으면 건너편 파란 하늘을 아래 땅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를 맞으며 찻집을 찾으니 피로가 몰려오고 덩치답지 않게 심한 고산증을 호소하는 그는 간이 침대만한 의자에 벌렁 누워 버리고, 태국이 좋아 수십 번 방문했다는 김의 터키 여행담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가이드는 네팔 트레킹담에 또 하나의 소원을 빌어본다. 언젠가는 꼭 네팔에 가리라. 8원(1원-150원)을 주고 흩날리는 빗속에 릭샤를 타니 바싹 마르고 외소한 기사의 발놀림이 힘겹다. 그의 삶이 힘겹다. 저녁도 굶고 곯아떨어지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곤한 잠에서 깨어나니 하늘 가득 별이 내려와 앉아 있다. 황급히 윗옷 하나를 챙기고 마당에 나서니 북두칠성과 초승달이 반긴다. 다가갈 수 없는 것은 모두 신비롭다. 가장 반짝이는 별을 찾아 두 손을 모아본다. 오래도록 별바라기가 되어 마당을 돌고 또 돌고 아무 상념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하늘과 별, 달이 있고 나는 없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소음을 따라 거리를 나서니 10시, 늦은 시간인데도 호텔 앞에는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로 가득하고 밤거리 구경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릎과 발이 시큰거리는 또 다른 고산병을 만나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첫 날은 가만히 누워 고원의 영을 느끼라는 선행자들의 충고가 진실이었음을 실감하며 다시 약 한 알을 털어 넣고 티벳에서의 첫 밤을 맞는다. 3. 구걸, 일상의 삶 (8/4) 너무 많이 잔 탓에 호강에 겨운 몸이 새벽부터 들썩인다. 새벽의 하늘이 궁금해 유리로 덮인 로비에 서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르고 만다. 반적반백의 구름이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아침을 열고 있다. 열심히 그림을 배워 꼭 스케치 여행을 오리라 야무진 꿈을 꾸며, 물리지 않는 산과 구름 뿐 아니라 사람들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어눌하고 순박하길 이기적인 꿈을 하나 더 보태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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