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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2편
작성자 박*일
작성일 2017.01.23


<혜초여행사 원고>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고쿄 – 촐라 – EBC – 칼라파타르)

 

변호사 박용일

 

제 2편 남체에서 포르체 들러 고쿄까지

 

4. 남체에서의 2박

 

  남체(바자르)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쿰부히말라야 산행의 전진기지이자 셀파의 본고장으로 각종 숙소와 상점들은 물론이고 은행, 인터넷카페 등 각종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우리 숙소는 마을 위쪽 오른쪽에 있는 사쿠라 게스트 하우스이었는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이 건물을 지어 영업을 시작하였고 근래에는 동업자인 산악인 출신의 셀파족에게 운영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넓은 식당에서 전속 요리사들이 제공하는 멋진 식단을 대접받으려니 고맙기 그지없었지만 다른 트레커들의 눈치가 자꾸 보였습니다. 식사 후 임선생, 부산서 온 김선생과 호텔 뒤 골목길을 올라 시야가 넓게 트인 곳에서 별들과 건너편 콩데를 보다가 혼자서 전망대에 올라 북녘으로 건너 탐세르쿠와 캉테가(6685m) 연봉과 아마다블람(6856m)은 물론이고 멀리 마지막 잔 빛에 빛나는 사가르마타 등 세계 최고의 연봉들을 어둠이 삼킬 때까지 보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서둘러 전망대에 올라 찬란한 여명 속에 스러져가는 별들과 설산들을 경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첫 햇살을 맞는 설산들의 신선함과 장엄함은 어제 저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고소 적응일로 전망 좋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과 쿰중마을을 다녀오는 일정이었는데 예전에는 혼자서 이곳 대신 타메까지 다녀온 일이 생각났습니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은, 2007년 무스탕에 같이 갔던 도반이 오래전부터 이 호텔에서 하룻밤 자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할 만치 전망이 뛰어난 곳입니다. 이 호텔은 남체마을 뒤 가파른 산능선을 한 시간 가량 올라야 하는데 힘은 들지만 올라갈수록 전망이 뛰어나고 트레커들과 상보체 학교 가는 학생들도 섞여서 즐거운 소풍 길 같았습니다.

  이 호텔도 일본인이 지은 곳으로 남체 뒷산 전망대보다 더 높고 가까워 에베레스트 뷰라는 이름값을 하였지만 그 대신 호텔 전망대에서 마셔야하는 찻값은 한잔에 500루피로 남체 보다는 두 배나 더 비싸 장소 값을 톡톡히 받고 있었습니다.

  호텔 부근에는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영어로는 로도덴드론) 등 나무들이 울창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성산 쿰빌라 (5761m) 아래의 쿰중(3788m) 마을이 넓고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쿰중은 남체와는 달리 주민들이 농사와 목축을 하면서 살아온 셀파족의 전통마을로 오래된 불탑들과 긴 마니석 길은 이곳이 티베트 불교가 성한 곳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마니석 길은 무스탕과 랑탕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예전에는 이곳이 중요한 교역로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마을 가운데 길가에는 롯지, 기념품 가게 등도 있었으나 매우 한산하였고 카드사용도 어려운 것이 문명에 덜 오염된 곳임이 분명했습니다. 힐러리 동상이 서있는 힐러리 학교에 들러 학생들과도 만나 보았는데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어 먼 곳에서도 공부하러 왔다고 합니다. 이 학교 건물은 외국에서 보낸 기부금으로 지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산악회에서 기부하여 지은 자그만 건물과 실버산악회에서 기증한 컴퓨터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지진피해도 겹쳐 많은 지원이 필요하여 우리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쿰중에서 남체로 오는 길에서 돌아보니 뒷산 쿰빌라가 우뚝 다가섰고 멀리 북쪽으로 내일이면 만날 촐라체와 투크체가 나란히 설봉을 뽐내며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상보체를 거쳐 남체로 내려오는 길은 멀었는데 건너편 캉데와 탐세르쿠는 물론 우리가 어제 힘들게 올라온 계곡이 보여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식사 후 혼자서 남체 곰파를 지나 타메 쪽 숲길을 2시간여 가다가 돌아왔는데 예전에 한 번 다녀온 길이라 친숙하여 좋았습니다. 깊은 계곡의 보데코시 강물소리와 건너편 콩데연봉을 벗 삼으니 밤의 신비가 더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의 타모마을 불빛이 유혹하였으나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려니 밤늦게 지쳐서 돌아오던 지난 일이 생각났습니다. 남체가 내려다보이는 고개를 넘자 저 아래 마을의 깊은 밤 전기불들은 조는 듯한데 마을 한 가운데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발길을 끌었습니다. 5-6 마리의 덩치 큰 검은 개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 듯 싸워서 스틱을 휘둘러 싸우는 개들을 겨우 해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부근에 서양인 노인 트레카 2명이 술에 취해 쓰러져 저들끼리 횡설수설하고 있었습니다. 잉마르 베르히만의 ‘제 7봉인’ 등에서 듣던 말투가 생각나서 영어로 ‘스웨덴인인가’ 하고 몇 번 물었더니 ‘노르웨이인이다’고 답하면서 일어나 안도의 숨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갑자기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투정을 부려 바로 아래의 아이리쉬 펍에 데리고 가서 겨우 전화기를 찾은 후 술집 젊은 주인에게 ‘당신 손님이니 책임을 지라’고 엄포를 놓아 부근의 티베트 가게주인과 함께 노르웨이인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티베트 가게주인이 고마워 가게에 함께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상이 매우 좋은 노인부부는 각 75세와 70세로 1950년대 후반 티베트에서 네팔로 천신만고 끝에 넘어와 이곳에 정착한지 오래되었으나 빨리 티베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망향의 설움을 들어냈습니다. 이에 저도 성산 카일라스에도 두 번 갔다고 말하니 가게 한쪽에 걸어둔 달라이라마 성하님의 사진도 보여주며 내년 1월 인도 뉴델리의 법회에 참석하려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도대체 중국 눈치를 보느라고 성하님 방문을 못 하게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 한국이 너무나 부끄러워 그 말은 차마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주인이 추천하며 들려준 명상에 쓰이는 사운드볼 소리가 얼마나 맑고 울림이 좋은지 2개를 사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길고 사연 많은 하루가 이렇게 가고 저의 삶 또한 이렇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으면서 잠을 청하였습니다.

5. 포르체 텡가에서 포르체, 마체르모 거쳐 고쿄까지 (5, 6일째)

  남체 마을에서 에베레스트 뷰 호텔로 가는 삼거리 언덕에 올라서면 평평한 길이 산중턱에 이어지고 저 아래 깊은 계곡에는 두드코시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반시간여 지났을까 낯익은 하얀 불탑이 나타나고 북쪽으로 아마 다블람, 로체, 눕체와 타보체 등이 자태를 들어냈습니다. 사가르마타는 눕체 너머로 우뚝 서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옛 애인을 만난 듯 가슴 뛰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능선길을 1시간여 갔을 때 길 한쪽이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곳에 얼굴이 햇볕에 타 새까만 노인이 도로 보수를 위한 기부금을 받는다는 호소문과 함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예전에도 만났고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그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히말라야 산록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부자 트레커들의 히말라야 사랑하는 마음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행들 뒤에 남아 대표하는 심정으로 서명도 하고 저에겐 거금이라 할 돈을 기부함에 넣고 ‘타쉬델레’ ‘단네밧’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안가 사나사란 숲길 삼거리에서 우리가 갈 포르체 텡가쪽 길은 ‘고쿄 가는 길’이란 표시가 붙어있는 산 위쪽이었으며 아래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큰 길은 건너편 산 위 마을 탱보체를 거쳐 사가르마타로 직행하는 길로 우리의 하산길이 될 곳이었습니다. 포르체 텡가 가는 길은 쿰빌라 동쪽 산록의 숲길이 이어졌는데 얼마 후 당도한 몽 마을에는 큰 불탑이 반겨주었고 지도에는 이곳이 라마 상게 도르제 탄생지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길은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목적지인 포르체 텡가 게스트 하우스는 바로 두드코시 강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따끈한 차를 마시며 한숨 돌린 후 혼자서 강 건너편 산위 마을 포르체로 향하였습니다. 이 마을은 오던 길에서 건너편 타부체 산맥 마지막 자락에 위치한 큰 마을로 예전부터 꼭 들려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히말라야 고산등반 셀파들은 주로 이 마을 출신들이고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스듬히 산길을 오르길 30여분, 울창한 숲이 경계를 이루는 마을입구에 들어서니 낡은 불탑 뒤로 널찍한 마을이 펼쳐져 있었고 뒤로는 탐세르쿠, 캉테가 연봉이 저녁노을을 안고 웅장히 서 있고 이들 산록과 저 아래 남체 쪽 계곡에서는 저녁안개가 밀려들고 있어 신비감마저 들게 하였습니다. 마을 한쪽의 돌담을 따라 위쪽으로 가는데 왼쪽 산비탈 숲속에서 갑자기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찬찬히 보았더니 새파란 깃털을 자랑하는 작은 공작새 같은 새들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저 녀석들이 네팔의 국조인 ‘단페’ 란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죽이고 오래 동안 그들이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의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와 자작나무 숲은 오래전 라마승이 자기 피를 뿌리면서 치루는 의식을 통해 지켜낸 것으로 알려진, 성스러운 곳이라서 위 국조들도 당연히 보호를 받아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마을은 예상보다 커서 넓은 들판이 구획지어 있고 곳곳에 말들도 평화롭게 저녁노을을 즐기는 듯 서 있고 아래쪽 넓은 밭에는 단페 여러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져서야 정신이 들어 서둘러 언덕길을 중간쯤 내려왔는데 앗뿔사! 길가에 소형배낭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헐레벌떡 다시 올라갔더니 두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배낭을 건네주어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한시간여 동안 저녁이라서 그런지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그 젊은이들과 여학생 한명 뿐으로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로 딴 세상 같았습니다.

 

 

  어둑해서야 호텔에 당도하였는데 호텔 부근에서 손전등을 들고 마중 나온 포터들이 있어 반갑고 감사하였습니다. 가이드 쿠마르는 건너편 산길에서 보여야 할 저의 불빛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어 포터들을 보냈다고 하여 ‘나는 밤중에도 불 없이 잘 다닌다.’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요란한 강물소리와 초롱한 별빛과 함께 긴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산 중턱의 능선 길을 북쪽을 향해 계속 걸었는데 이 산은 쿰중 뒷산인 성산 쿰빌라의 동쪽 사면으로 우리가 갈 마체르모 뒷산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강 건너편 동쪽에도 포르체 뒷산에서 이어진 타부체와 촐라체가 정상의 설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촐라체는 산악인 박정원이 후배 한 명과 동계 북벽을 초등하고 내려오다가 후배가 크래바스에 빠겨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고 박정원은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고 더 이상 고산등반을 할 수 없어 패러글라이딩으로 바꾸어 지난해인가 히말라야 상공을 종주하는 멋진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박정원의 촐라체등정은 박범신의 동명 소설 『촐라체』로 더욱 널리 알려져 많은 산악인들에게 전설적인 이야기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번 여행은 이 산을 서쪽에서부터 한 바퀴 도는 셈이어서 산 동쪽의 호수 촐라초와 함께 제게는 사가르마타 못지않게 관심이 쏠리는 곳입니다.

  하염없이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산중턱에 위치한 돌 마을의 나마스테 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부근 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빙폭을 이룬 장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식사 후에도 계속 높은 산중턱 길을 걸었는데 강 건너편에도 산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촐라입구인 드라그나그에서 포르체까지 이어져 있고 한 곳에는 전신주들이 서 있는 것이 부근 산골짜기의 소형 수력발전소의 전기를 마을로 끌어오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였습니다. 네팔 산간에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동안 땔감으로 베어버린 나무들과 그로 인한 산의 붕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본 태양발전기도 소형, 소수라서 태부족인데 한편으로는 전기가 문명을 더 끌어들이는 부작용을 생각하니 동양 최고 지혜인 중용, 시중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과연 그 지점이 어딘가를 항상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도.

 


  다음날 마체르모 (4470m)에서 고쿄 중간까지는 전날과 같이 산중턱 길을 걸었으며 중간에 팡가 마을 부근에는 20여년 전 지진으로 인한 대형 산사태 모습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자연의 위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길은 널찍한 강가로 이어졌는데 이 강은 북쪽 초오유에서 발원한 노줌바 빙하의 마지막 부분 빙퇴석 왼쪽 가장자리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팡가에서 고쿄에 가까이 가면서 북쪽으로 바로 앞에 촐로(6089m), 캉충 (6063m)의 설봉이 닥아 섰고 그 너머로 자이언트인 초오유(8188m)가 보여 가슴이 뛰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에메랄드빛의 첫째 호수(롱폰고 초)가 그림처럼 나타났고 원앙새 같은 한 쌍의 새가 노닐고 있어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이어서 더 넒은 제 2, 3 호수(투정 초, 고쿄 초)가 연이어 나타나 바로 옆 파리랍체봉은 물론 멀리 북쪽의 캉충도 담고 있어 이 세상 풍경 같지 않았습니다. 이 고쿄호수들은 물론 히말라야의 빙하가 만든 호수들인, 랑탕의 코사인 쿤드, 안나푸르나의 데모다르 쿤드, 틸리초 등과 티베트 서부의 성산 카일라스의 마나사로바호수 등 성호들로 칭송 받아온 수많은 호수들은 대자연이 빚어낸 지구상의 빛나는 보석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셋째 호숫가에는 푸른색 지붕을 인 집들이 그림 속처럼 모여 있었는데 오늘의 목적지인 고쿄(4790m)였습니다. 고쿄는 이번 여행의 중요한 거점으로 저에게는 지난 10여년 간 꿈에 그리던 곳입니다.

 

 


(제 3, 4편으로 계속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