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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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일 |
작성일 | 2017.01.20 |
<혜초여행사 원고> 2016년 11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탐방기 변호사 박용일
지난 (2016년) 11월 15일부터 30일까지 16일간 네팔의 쿰부 히말라야를 다시 찾아 무사히 다녀온 것은 제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고 감동이었습니다. 2009년 그곳을 처음 다녀온 지 7년 만인 만 70세의 나이에 꿈에 그리던 고쿄리(5360m) - 촐라(5420m)를 넘어 세계 최고봉인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초모랑마, 8848m)를 최고의 전망대 칼라파타르(5550m)에서 다시 보고 베이스캠프(EBC)를 다녀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난 9월말 사실상 변호사생활에서 은퇴하여 당장 무엇부터 할까 궁리 중에 혜초여행사로부터 그동안 최소 참가인원(6명)이 안 되어 못 떠나던 고쿄 – 촐라코스 출발이 확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동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40여 년간의 변호사생활을 접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10여년 전부터 60대 후반을 은퇴시기로 생각해 오다가 지난 2013년 말부터 시작한 전국교수공제회 사건으로 3여 년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위 공제회사건인 국가배상청구 사건은 그 진행은 물론 위임계약 당사자 중 한명인 젊은 교수의 계약해지 및 사문서위조 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서 빚어진 착수금 청구소송, 형사고소 및 변호사 징계사건 등으로 견디기 힘든 수모를 당하여 2014년 말 급성폐렴으로 사경을 헤맨 제 일생일대의 시련이었습니다. 그 이후 2여년간, 즐기던 마라톤은 물론 여행도 못 하다가 은퇴기념으로 다시 히말라야 여행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니 저에게는 새로운 삶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 7명은 모두 남성으로 제주, 부산 등 각 지역에서 모였고 나이도 3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까지였는데, 부여의 김선생을 제외하고는 히말라야 등 고산등산의 경험이 없어 이번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번 여행의 최대 난코스인 촐라를 모두 무사히 넘었으니 어쩌면 여행 내내 일행들 뒤에 처져 다니다 가끔 옆길로 샌 제가 오히려 다른 일행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송구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무거운 혜초 카고백을 들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인천공항 집합장소에는 젊은 여행사 직원만 보였는데 먼저 도착한 두 명은 이미 체크인 하러 갔으며 개별적으로 출국절차를 밟기로 하였다고 하여 혼자서 체크인을 하려니 변화된 세태에 어리둥절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처럼 히말라야 고산에서 장기간 등산을 하는데 무엇보다 팀웍이 필요한데 출발지에서 참가자들 간에 인사조차 없이 떠나게 되어 여행사 조치가 의아했습니다. 1시 25분발 KAL기는 카트만두까지 6시간 30분 동안 날아갔는데 도착하기 전 1시간 여 동안은 멀리 나타난 흰 설산의 히말라야 영봉들이, 특히 캉첸충가에 이은 사가르마타 등 쿰부히말의 웅자는 너무나 반가웠고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5시 40분경(시차 3시간 15분) 트리뷰반공항에 도착. 드디어 혜초 카고백을 든 낮선 일생들을 처음 만나 각자 임시 비자를 얻느라 허둥대었고 이어 혜초지사원인 이번 여행의 가이드 쿠마르 시레스타로부터 환영의 꽃목걸이까지 받으니 네팔도착이 실감났습니다. 쿠마르는 보통 키에 다부진 몸매로 밝은 인상이었는데 인도 뉴델리 한국식당에서 10여년간 요리사로 일한 경력이 있고 우리가 히말라야에서 첫 밤을 보낼 팍딩지역 출신으로 가이드 경험이 많다고 하여 마음이 든든하였습니다. 공항에는 히말라야를 찾는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과 이들을 맞이하는 네팔인들로 법석대었고 시내로 가는 길은 퇴근시간이여 서인지 소문과는 달리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매연 먼지도 심해진 것 같았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로얄싱기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독방을 쓰게 되어 약간 외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사 후 혼자서 가까운 타멜거리로 나갔는데 즐겨 찾던 서점 필그림은 9시가 넘어 문을 닫아 부근의 다른 서점에서 크리스 보닝턴의 『에베레스트』, 센드라 노엘의 『에베레스트 파이어니어』등 등산책은 물론이고 만주스리 타파의 『네팔 현대사』도 샀고 지도전문 매점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고쿄지도는 물론 안나푸르나, 돌포 지도들도 다음번 여행을 꿈꾸며 샀습니다.
3. 루크라에서 남체(바자르)까지 (2, 3일째)
루크라행 첫 비행기(에어 타라)를 타기위해 5시에 일어나 짐(15kg이하)을 다시 챙겨 공항에 도착, 비행기를 향해 나서니 랑탕 등 가까운 설산 꼭대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여 황홀하였습니다. 소형 비행기의 전망 좋은 왼쪽 좌석에 앉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륙하였는데 얼마 후 창밖으로 랑탕, 고리 상카르 등이 연이어 반겨주었고 아래로는 산, 계곡과 마을이 그림처럼 아침안개 속에 잠겨있었습니다. 북동쪽으로 40여분을 날아가니 깊은 계곡 건너편에 착륙지인 루크라의 자그만 마을(2840m)의 비행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탈지고 짧은 비행장’이란 명성답게 착륙할 무렵에는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사히 도착하였을 때는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자그만 공항을 나서니 수많은 네팔사람들이 애타게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 정복자펠레의 주인공들처럼. 공항 아래편에 위치한 호텔에서 이번 여행에 함께 할 부가이드 람 쿠마르 마가르, 주요리사 디팍 라이와 포터, 식사보조원 각3명과 짐을 운반할 죠(야크와 소의 잡종) 5마리와 주인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침낭을 하나씩 받아 짐을 다시 꾸리고 나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을 벗어나 등산장비 기념품 등이 늘어선 루크라마을을 벗어나는 곳에는 여성좌상을 인 아취형문을 넘게 되었는데 그 여성은 사가르마타를 처음 등정한 네팔여성으로 네팔은 곳곳에 인물상을 세워 인물을 기리는 문화가 번성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한국 내 네팔인들의 대부 이근후 선생님은 네팔화가 등과 교류하며 네팔문화에 심취, 최근에는 히말라야 산에 관한 네팔우표를 모아 책을 펴내 국제적인 우수도서상도 받았는데 네팔우표에는 문화인등 인물이 많은 점만 보아도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문화선진국임을 강조해왔습니다. 루크라에서 팍딩까지는 두드코시 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데 건너편의 콩데(6168m)산맥의 끝자락인 눕라의 웅자가 내려다보이는 체프렁 등 마을이 연이어 있었고 마을은 대부분 롯지 등을 운영하는 한편 야채도 심고 꽃들도 가꾸고 있어 매우 평화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팍딩 못 미쳐 작은 마을 추타와 길가에 있는 부가이드 람의 집(가게)에 들러 젊은 처와 귀여운 딸을 만났는데 람이 젊은 나이에 이런 집을 장만한 것이 대견하기도 하였으나 앞으로도 계속 힘든 가이드 및 가게를 운영하면서 살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마침 람의 말 한 마리가 있어 귀엽다고 저의 얼굴을 몇 번 말코 언저리에 대었더니 말이 갑자기 저의 왼쪽 턱을 물어 제턱이 날아간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초식동물의 이빨이라 약간의 상처만 남겨서 다행이었습니다. 람은 너무나 미안해하며 말을 야단쳐서 제가 도리어 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팍딩은 산속이라 바람도 심히 불고 기온이 내려가 파카를 꺼내 입었습니다. 예전에도 이 팍딩스타 롯지에서 묵었고 방도 강을 마주한 같은 곳이라 밤새 강물소리가 요란하여 잠을 이루기 어려웠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녁과 새벽에는 마을 앞 출렁다리를 몇 번이나 오가면서 주위의 설산과 초롱한 하늘의 별들을 실컷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초저녁 하늘의 은하수와 안드로메다은하, 새벽의 북두칠성 및 오리온좌 등 북반구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식스(6)다이야몬드들은 환한 달빛에도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 남쪽 아래 하늘에서 보이던 시리우스가 하늘 중천에 떠있어 이곳이 남반구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런 별 보기는 이번 여행 내내 밤마다 무슨 비의처럼 치룬 저만의 행사였습니다. 마침 의정부에서 오신 임선생이 별에 관심이 많아 대표적인 별자리들과 안드로메다은하 등을 가르켜주며 별과 우주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팍딩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톡톡마을에서 콩데로 가는 갈래 길이 나왔는데 그 길로 올라가면 산록에 전망이 뛰어난 콩데호텔이 있다는데 다음번에는 그곳에서 하루라도 묵고 싶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좌우로 난 산길을 계속 가면서 많은 트레커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고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과 수많은 말과 당나귀들을 만났는데 그들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한다는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팍딩과 남체의 중간에 위치한 몬조에서는 탐세르쿠(6608m)를 볼 수 있었고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온 가족일행과 인사를 처음 나누었는데 그들과는 여행 내내 여러 차례 만나 반가웠습니다. 학교도 있는 조르살레에서 검문소를 지나 드디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한 시간여 두드코시강을 세 번이나 건넜는데 마지막으로 건너는 출렁다리 라자도반은 강 아래에서 처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하늘 높이 걸려있었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날 다리까지 나란히 있어 잊지 못할 광경이었습니다. 이 다리 바로 아래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따라온 두드코시 강에 북서쪽 타메쪽에서 내려온 보데코시 강이 합류하고 있는데 강수량을 보아서는 보데코시가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지도를 보니 북쪽의 우리가 가려는 고쿄에서 내려온 두드코시가 임자콜라와 만나고 있어 두드코시가 주된 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타루초 등이 잔뜩 걸린 라르자 다리에서 깊은 계곡 저 아래 힘차게 흐르는 두 강물을 보면서 이 강물들이 저 북녘 세계의 지붕인 설산 빙하들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 여기까지 흘러 내려온 것을 생각하니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위 다리를 건너서부터는 길은 가파른 산길로 변해 남체까지 고도 600m를 오르는 이번 산행의 첫 시험 관문인데 다행이도 중간에 숲 사이로 사가르마타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이제까지의 힘든 기분을 싹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남체도 지척이라 생각하고 한 시간여 마지막 안간 힘을 써 올라가니 오목한 산기슭에 층층이 300여 집들을 거느린 정다운 마을이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 마을 입구 마니차와 불화가 그려진 문을 들어서면서 당장 눈에 띈 것은 넓은 수로가 생겼고 입구 왼쪽에 있던 마을 시장터가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시장터는 티베트에서 랑파라를 넘어 가져온 물건들을 팔던 곳이나 3년 전부터 티베트인들의 입국을 막으면서 랑파라를 폐쇄하여 요즈음은 남쪽인 인도를 통해서만 물건들이 올라오고 있고 시장터도 마을 한 쪽으로 옮겼다고 하여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2-4편으로 계속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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