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히말라야 트레킹은 도시와 다른 시간을 갖고 있는 여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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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황*지 |
작성일 | 2014.10.06 |
지금 이 곳 대한민국에서 보내는 24시간과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24시간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다른 시간처럼 느껴진다. 내가 속한 공간에 따라서 시계 속 분침과 초침이 다르게 돌아가는 것일까?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는 코스마다 걷는 이의 체력마다 그리고 각기 원하는 일정마다 매일 걷는 거리가 다르고 걷는 시간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10Km 이상씩 걸어야 다음 기점을 위해 잠을 잘 수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며 최소한 5시간 이상의 산행을 해야 한다. 원점회귀의 산행 코스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끝내고자 하는 목표점이 있고 돌아와야 할 곳이 있다. 내가 머물던 공간이 아닌 낯설음으로 인해 새벽녘부터 뒤척이며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따뜻한 차 한잔과 빵 조각을 먹고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오로지 걷는 것 뿐이다. 히말라야에서의 하루는 걷는 것에서 시작해서 걷는 것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서 걷는 길의 난이도는 어쩌면 심한 오르막과 심한 내리막이 이어지는 우리네 산행길과는 다를 수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능선길과 원시림의 짙은 녹색이 우거진 곳들과 호젓하고 조용한 산길을 걸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산행길을 걷는다는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간이 주는 일부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탈지지 않아도 고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길과 사투를 벌이고,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능선길이 도통 줄어들지 않아 당황해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보다 난이도가 쉬워 보이는 산행길과 평지길도 좀처럼 쉽게 걸어지지 않는 게 히말라야 트레킹 길이다. 평소에 마주할 수 없었던 높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걷는 거리는 하루에 10km 남짓이다. 10km를 하루 내 걷는다면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갈 것 같지만, 내 마음대로 뛸 수도 없고, 손에 잡힐 것 같은 능선의 끝머리까지 뛰어갈 수 없기에 걷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는 하루 일과의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그저 일어나고, 걷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 걷는 단조로운 일상의 시간이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 속의 시간을 오히려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보내는 우리의 시간은 매우 세분화되어 쪼개져 있고, 빠르고 정신 없게 흘러간다고 느낀다. 어제의 야근과 회식의 피로에 겨워 이른 아침 두 세 번의 알람에 겨우 깨어나 미어터질 듯한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세상의 일과를 체크할 때까지 우리의 정신은 깨어나지 않는다. 떠밀려 지하철 역을 통과한 후 회사 앞 커피 전문점에서 한잔의 커피를 손에 들고 나서야 잠에서 깬 기분이 든다. 분명 어제 만났던 사람을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것 같지만 우리는 서로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일터에 들어서면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체크하고, 누가 나에게 무슨 일을 시켰는지, 오늘은 또 어떤 귀찮은 일들과 대면해야 하는지 체크한다. 무심히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이메일부터 열어서 스팸 메일을 걷어내고 일과 관련된 것들만 남겨둔 채 별 관심 없는 직장동료에게 어젯밤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 두 개의 회의와 보고서들을 써 내려가고 계획했던 일을 다하지 못한 채 끝없이 울려대는 메신저에 화답하고 나면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직장인 회식이라는 곳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향한다. 이렇게 보내는 24시간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바쁘다 바쁘다 말로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언제 이 곳을 탈출할 것인가 하는 생각과 이번 주말엔 어딜 갈까. 대체 왜 내게 이런 일들을 시키는 것일까.와 같은 상념들과 의미없는 생각들로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시간은 진짜 내가 원하는 정신이 머무는 곳, 현재의 내 육체가 원하는 것들에 몰입되어 있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들 뿐이다. 머릿속에 몸 속에 기억되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는 소중하지 못한 시간들인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보내는 일상의 시간은 도시에서의 시간과는 다르다. 우리가 걷고 싶어서, 내가 걷고 싶어서 선택한 소중한 시간이다. 그 소중한 시간은 고도에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내는 내 육체의 가쁜 숨소리와 전자 생명체의 소리가 최소화된 자연 생물의 소리들로 채워진다. 히말라야에서의 시간은 걷는 자와 걷는 자를 둘러싼 환경 그 자체인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진심으로 대하고 몰입하는 시간이므로 그 시간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화살처럼 빨리 흘러간다. 하지만 그 빠른 시간 안에서 우리는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관계들에 몰입하면서 진정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어제 만났던 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먼저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나의 본모습일 지도 모르는 것이다. 매일의 시간을 히말라야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도시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 우리가 도시로 다시 돌아와 할 수 있는 건 도시 안에서도 그만큼의 몰입을 통해 행복한 시간을 주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지 않기에 의미 없는 시간을 바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을 버리고, 지금 나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에 진실된 관심을 갖는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은 여행자에게 도시로 돌아가면 헛된 상념이 아닌 꼭 필요한 생각들에 집중력을 갖고 소중한 시간들로 삶을 살찌우라고 가르쳐 준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지만> <내 숨소리와 자연의 소리만이 귓> <걷고, 먹고, 자고 다시 일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