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레레 최고 포인트. 시킴과 국경을 이룬 설산이 보입니다.(혜초여행 한필석 상무)
안녕하세요.
한필석 상무입니다.
세계 제3위 고봉 캉첸중가(8586m)는 제가 월간산 기자시절이던 2003년 3월 말 한왕용 원정대 동행취재차 남면 BC 옥탕에서 하루한나절거리인 안다페디까지 동행하고 이후 포터 2명과 함께 셀레레를 거쳐 군사로 넘어간 다음 북벽 팡페마 BC까지 둘러보았던 히말라야 고봉입니다.
▲ 팡페로 가는 험로.
당시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해발 3,300m대 안나페디에서 깊은 눈에 덮인 4,700m대 능선인 세레레를 이틀간 넘어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군사에서 1700m 이상 차이 나는 팡페마 BC를 올라선 뒤 일정에 쫓겨 슈케트라 공항까지 3박4일 만에 닿는 일은 정말 엄청나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1,000m 넘는 고도 차이를 올려치는 일은 정말 온몸에서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답니다(포터 2명이 눈물을 흘릴 정도).
▲ 팡페마BC에서 도착하는 순간 바라보이는 캉쳉중가 북벽
그런데 비행기 시각을 1시간 정도 남겨놓고 슈케트라 공항에 도착했더니 공항 직원이 “날씨가 나빠 결항”이라지 뭡니까. 이튿날 비행기는 예정 시각에 맞춰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활주로에 내려앉았지만 다른 승객이 탑승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아야했지요. 제 자리는 없었으니까요. 한데 프로펠러가 핑핑 돌다가 멈추지 뭐예요. 그리곤 비행기에서 내린 조종사가 저한테 다가와 “꼭 이 비행기를 타야하냐?” 묻기에 이튿날 카트만두를 출발, 방콕을 경유해 귀국하는 항공권을 보여주었더니 비행기로 들어가 네팔 사람을 내리게 하곤 저더러 타라지 뭐예요. 네팔 사람한테 미안하긴 했지만 얼른 탔죠(그 전날 600m 아래 타플레중에 있는 항공사 사무실에 가서 통사정했던 게 먹혔던 것 같습니다).
카트만두에 도착, 몸무게가 6kg이나 빠져 피골이 상접한 제 몰골에 깜짝 놀란 상혁 엄니께서 챙겨주신 삼겹살 열심히 먹긴 했는데 또 그게 탈이 났지 뭐예요. 이튿날 방콕에서 토사광란으로 고생 고생했던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답니다.
▲ 셀레레.
그렇게 고생하긴 했지만 캉첸중가는 늘 제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네팔 동단에 위치한 오지라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어요. 셀레레 능선에서 바라본 캉첸중가 히말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도 감동이지만, 1년의 반은 잠들어있고, 반은 깨어있다는 쿰바카르나(자누, 7,711m)는 북쪽에서는 독수리가 도약하려는 듯 살기가 넘쳤고, 남쪽에서는 마치 쿰부히말의 미봉美峰 아마다블람을 보는 듯 수려했습니다.
남면 BC를 향할 때는 정말 다 쓰러져가는 집들만 눈에 띄어 주민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지만 북벽 BC 트레일 상의 셰르파 부락인 군사, 카르카 마을 캄바첸은 오지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이 눈길을 끌었답니다. 양탄자 짜는 마을 팔레도 인상적이었고요. 주민들은 정말 정겨웠습니다. 남면 옥탕을 향할 때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손가락으로 주물럭대서 만들어낸 창(우리네 막걸리)을 기름걸레 같은 행주로 닦아낸 사발에 담아 내놓던 주모酒母(수줍어하는 모습에 멋있는 척하면서 벌컥 들이졌답니다), 피곤해서 눕고 싶어하는 저한테 럭시(우리네 고량주)를 연신 건네던 촌로村老, 느닷없이 재워달라는 저한테 본인의 대나무 침상을 내주었던 새댁 등등, 지금도 어렴풋이나마 얼굴이 떠오른답니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3월4일 23일 일정으로 고객 5분과 함께 캉첸중가로 향했습니다. 그중 3분은 지난 가을 알프스 트레킹 때 인연맺은 분들이고, 또 한 분은 오랜 선배, 또 한 분은 코로나 전부터 쿰부 3패스를 엄청 고대해왔는데 올 봄엔 쉽지 않으니 캉첸중가로 방향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 설득해 동행하게 된 분입니다. 인원이 적다보니 참가비도 제법 됐고요.
3월4일 늦은 밤에 도착한 카트만두는 코로나 2년 사이 많이 변했더군요. 트리뷰반 국제공항은 활주로에서부터 건물 곳곳이 깔끔하게 변했고, 비자도 전자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객이 많지 않아 줄을 서지도 않고 입국심사를 받았고, 화물을 찾고 검색대를 거치는 시간도 매우 짧아졌습니다. 검색대를 지나면 예전엔 바로 우회전해 바깥으로 나갔는데 지금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답니다. 한데 나와보니 예전 출구 입구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ㅎㅎ
이튿날 카트만두 국내선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드라푸르까지 45분 날아가고, 거기서 지프를 타고 타플레중으로 향했습니다. 놀랍더군요. 20년 전 버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칠던 도로가 거의 다 포장돼 있지 뭐예요. 물론 포장이 벗겨진 구간이 적진 않았지만요.
더욱 놀라운 것은 트레킹 기점 타플레중에서 도보로 이틀거리인 세카툼까지 거칠지만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카툼 부근 군사계곡을 막아 댐을 쌓는 공사를 위해 닦은 도로라더군요. 하산길 얌푸딘에서 타플레중~일람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도로도 나 있었고요. 그래서 도보트레킹 일정을 하루 줄여 트레킹 10일차 군사에서 하루 쉴 수 있었습니다.
▲ 20년 전 제가 하룻밤을 머물렀던 집입니다.
캉첸중가는 역시 아름답고 멋졌습니다. 북벽 팡페마 BC로 가는 사이 바라보인 쿰바카르나, 캄바첸(캉첸중가 위성봉), 얄룽캉(캉첸중가 서봉), 캉첸중가 주봉은 정말 일행 모두를 감동케 했습니다. 쿰바카르나는 독수리와 같은 날카로움도 아마다블람 같은 아름다움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요. 이틀간 걸은 셀레레 구간은 눈 덮인 산길을 오르느라 진땀나게 했지만 캉첸중가 남면뿐만 아니라 인도시킴과 국경을 이룬 심할리아산맥, 마칼루 산군의 경계를 이룬 잘잘레산맥까지 바라보여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20년 전 시간이 모자라 다음을 기약해야했던 캉첸중가 남면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체람(3880m)에서 표고차가 900m 가까이 나는 옥탕(4,740m)을 당일로 다녀오자니 힘들긴 했지만 남면은 거대한 설벽을 이룬 채 압도적인 풍광으로 가슴 벅차게 했습니다. 하산길 마지막 날 멀리서 반짝이는 쿰부카르나는 마치 “꼭 다시 오세요~” 하며 불러대는 듯해 정겨웠고요.
다 좋았다면 과장일까요? 아뇨~, 진짜 다 좋았습니다. 누구든 히말라야의 속살을 보고픈 마음이 있으시다면 캉첸중가를 꼭 찾아보세요 ^^
▲ 하산길에 반겨준 랄리구라스.